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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첫 10년의 최고 한국영화는?

영화 2010/01/18 09:07 Posted by 3M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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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gora가 편집장을 맡고 있는 격월간 영문저널 "KOREAN CINEMA TODAY"(발행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난해 연말 흥미로운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국내외 평론가들을 상대로 지난 10년간 가장 훌륭한 한국영화를 뽑아달라고 했고, 한국과 영국, 일본, 호주 등지의 평론가 40명이 설문에 응답했습니다. 설문 결과는 잡지에 실렸으나, 이게 해외로 발송되는 영문 저널이라 정작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은 게 아쉬운 차에 이 공간을 통해 공유합니다.

21세기의 첫 10년이 끝났다. 이 기간 동안 한국영화는, 비록 부침이 있긴 했지만, 이전 시기에 경험하지 못했던 최대의 전성기를 보냈다. 잠재된 창의력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새로운 재능이 출몰했다. 장르 안에서 현실에 대한 발언을 녹여낸 프로듀서와 감독들에 힘입어 한국영화는 자국 박스오피스에서 굳건한 우위를 이어갔으며, 자기 브랜드를 만들어낸 작가들이 잇따라 탄생했다.

Korean Cinema Today 21세기 첫 10년을 보내는 시점에, 국내외 평론가들에게 이 기간에 나온 베스트 한국영화를 각자 5편씩 뽑아달라고 요청했다. 작품성과 완성도 면에서 당대의 가장 우수한 영화를 일별해 봄으로써 지난 10년을 비평적으로 추억해보자는 취지였다.

학자와 언론인을 포함한, 40명의 평론가가 설문에 참여한 결과,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가장 많은 지지를 얻어 1위에 뽑혔다. <살인의 추억>은 국내 평론가 뿐 아니라 해외 평론가들로부터도 가장 많은 표를 얻어 명실상부한 베스트 영화에 낙점됐다. 이와 관련해 기고한 글에서 씨네21 정한석 기자는 "<살인의 추억>은 이상적인 대중영화에 대한 열망의 표식"이라고 그 의미를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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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그 다음으로 많은 표를 받아 2위에 올랐으며 이창동 감독의 <밀양> 3위를 차지했다. 평론가 장병원은 <올드보이>와 관련해 "예민한 서사의 조직과 스타일 전략의 단단한 결합을 통해 내셔널 시네마의 한계를 넘어 글로벌화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평가했다. 전 버라이어티 기자이자 koreanfilm.org를 운영하고 있는 달시 파켓은 "<밀양>은 한국영화의 드문 성취이자 이창동 감독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했다.

봉준호와 박찬욱은 각각 <괴물> <공동경비구역 JSA>를 포함한 2편씩의 영화를 순위권 내에 올려 놓음으로써 지난 10년간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쌍두마차임을 입증했다.

한편, 김기덕과 홍상수 등도 비교적 많은 지지를 얻었으나 워낙 다작을 하는 감독들인지라 표가 작품마다 분산돼베스트 5’ 안에 들지는 못했다. ‘베스트 10’ 영화로 시야를 넓히면, 봉준호 감독의 <마더>와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 김기덕 감독의 <빈집>, 이명세 감독의 <형사: 듀얼리스트> 등이 포함됐다.

 

순위         작품명                   감독       득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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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살인의 추억                 봉준호      25

2      올드보이                     박찬욱      16

3      밀양                          이창동      11

4      괴물                          봉준호      10

5      공동경비구역 JSA          박찬욱       9


posted by cinemAgora
2010/01/18 09:07 2010/01/1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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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터앤미디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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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첫 10년의 최고 한국영화는?> “KOREAN CINEMA TODAY(발행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난 연말, 한국, 영국, 일본, 호주 등지의 평론가 40명을 상대로 지난 10년간 가장 훌륭한 한국영화를 뽑아달라고 했습니다.

    2010/01/1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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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감독의 출세작이자, 99년 개봉 당시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주유소 습격사건>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작품이었다. <투캅스> 시리즈의 명맥을 이을, 한국형 코미디의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했다는 점. 주연을 맡은 유지태, 이성재, 강성진 같은 배우들이 고루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특히 유오성의 잠재력이 발견됐다는 점.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영화 검열이 폐지되면서 한국영화의 소재와 표현의 영역이 폭발적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증명했다는 점.

무엇보다 사회의 극단적 루저를 상징하는 네 명의 젊은이가 '그냥' 주유소를 털게 되면서 벌어지는 하룻밤 사이의 해프닝을 통해 이 사회의 문제점을 고루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로서의 성취를 이뤘다는 점은 관객 뿐 아니라 비평가들의 주목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주유소라는 공간이 주는 상징성, 젊은이들의 저임금 중노동을 착취할 뿐만 아니라 후안무치하기까지 한 사장(박영규)의 캐릭터 묘사는, 이 재기발랄한 블랙코미디가 현실성과 통쾌함을 동시에 확보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전편이 지닌 이런 의미심장함에도 불구하고, <주유소 습격 사건>이 개봉된 지 무려 10년이나 지나 속편이 만들어진다고 들었을 때,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과연 속편이 <주유소 습격 사건>이 소화됐을 당시만큼의 정서적 교감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강산도 변하는 시간 동안, 관객들의 트렌드와 하물며 시대 정신도 바뀌었을 텐데 말이다. 자칫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으니 출세작을 한번 더 욹어 먹으려는 심산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위험성을 안고 있기도 하다.

김상진 감독은 분명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흐른 시간만큼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하면 지금의 관객들에게도 통하는 지점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5년 전 아들을 잃고 연기 생활을 사실상 접었던 박영규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박영규에 대한 오마주에 가까울 정도로, 전편과 똑같은 악질 사장을 연기한 그의 비중은 다른 주연들을 압도할 정도로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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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이 처들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라면, 속편은 지키는 자들의 이야기다. 폭주족의 주유소 침탈에 골머리를 앓던 사장은, 무술 유단자 네 명을 주유원으로 고용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그러나 사장의 막돼먹은 행태에 불만을 품은 이들 네명은, 어느새 사장을 감금해 버리고, 기름을 반값에 팔아 밀린 월급을 해결하려 든다. 여기에 막 수송차를 강탈한 탈주범들과 폭주족들이 얽히고 설키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전편의 상황을 살짝 꼬아 놓은 것을 빼면, 주요 캐릭터의 배치나 갈등 관계, 점층하는 폭력의 향연은 전반적으로 대동소이하다. 대동소이하다는 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전편이 제시했던 신선함과 꽤 밀도 높았던 긴장감이 증발돼 버려 아쉽다는 얘기다. 그건 10년이나 지나 만들어진 속편의 한계일 수도 있고, 김상진 감독의 코미디 감각이 무뎌진 탓일 수도 있다.

우선 <주유소 습격사건>의 풍자적 설정이, 물론 청년 백수들이 넘쳐나는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긴 하되, 지키는 자에서 빼앗는 자로 전환되는 상황의 극적 설득력이 약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마디로 동기 부여 과정이 약하다. 게다가 박영규에 대한 지나친 배려는, 다른 캐릭터 묘사의 심도와 전체 플롯의 균형을 깨뜨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니까 그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영화 속 사장처럼 박영규는 다른 배우들이 충분히 입체감을 확보할 수 있을만큼의 시간을 빼앗고 있는 아이러니에 빠져 있는 듯 보였다. 그를 진정으로 배려했다면, 더 짜임새 있는 드라마 안에서 그의 캐릭터를 제대로 대우하는 것이어야 했다고 본다.

대중 영화로서, 그것도 코미디로서, 객석에서 폭소가 자주 나오지 않는다는 건, 치명적인 허점이다. 시사회에서 내 바로 옆좌석에서 <주유소 습격 사건 2>을 본 한 개그맨은 시종 일관 한번도 웃지 않았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1월 21일 개봉.

posted by cinemAgora
2010/01/18 09:03 2010/01/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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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맘과 함께 살던 일곱 살 꼬마가 얼굴도 모르는 친아빠를 찾아 나서기 위해 가출을 감행한다. 그런데 문제는 꼬마가 찾은 아빠가 여자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원래 남자였는데, 그 새 여자로 성을 바꿨다. 일곱 살 아이의 정신 세계에서 트렌스젠더가 이해될 수 있을까? 여자가 된 아빠는 딱 일주일만 남장을 하고 아빠 노릇을 하기로 한다. 이 바람에 그녀의 사랑도 위기에 처한다
.

영화 제목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는 일곱 살 꼬마의 눈높이에서 자신의 아빠를 논평하는 말이다. '좋아한다'는 말은 왠지 아빠가 여성 취향적인 것 같다는 얘기인데, 바로 그렇게 성적 정체성의 특수한 문제를 이해할 수 없는 시점과, 부모 자식간이라는 보편적 관계가 충돌하는 것이다.  

날라리 삼대의 좌충우돌을 다룬 <과속스캔들>처럼,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역시 부모 자식간의 엉뚱한 재회라는 대동소이한 설정을 보여준다. 다른 것이 있다면, 가족 휴먼 드라마의 틀 안에 민감한 성적 정체성의 문제를 슬쩍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중영화이므로, 호흡은 결코 진중하거나 계몽적이지 않다.

이 영화의 핵심은, 아빠는 당연히 남자여야 한다는 통념을 거역해 보는 것이다. 거기서 뭔가 색다른 해프닝과 갈등, 화해의 드라마를 끄집어 내려는 접근 자체는 신선해 보인다. <7급 공무원>의 천성일 작가가 쓴 시나리오라 그런지, 감칠맛 나는 대사도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예상치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드라마는, 밋밋하게 전개되다가 맥 없이 수습된다. 이를테면, <과속 스캔들>의 오디션 행사 신처럼 파국의 위기가 불러내는 서스펜스가 빠져 있다. 각각 소리에 민감하다는 설정으로, 두 사람이 천생 부자지간이라는 걸 강조하는 걸로는 가족 재회극의 감동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을 뿐더러, 이나영이 연기하는 남자 행세하는 여자 아빠도 그다지 드라마틱하게 우스꽝스럽지 않다. 남장한 거 빼고는, 사실 이나영의 연기는 언제나 그렇듯 별로 임팩트가 없다.  

미소 지으며 볼만한 영화라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기억에 남을만한 영화는 아니다.

posted by cinemAgora

2010/01/18 08:59 2010/01/1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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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진과 김혜수는 끝까지 열애설을 부인했어야 한다. 아니 최소한 침묵으로 일관했어야 한다. 보도 자료를 통해 열애 사실을 공식 인정함에 따라 그들은 과거의 해명이 거짓말임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됐을 뿐만아니라, 향후 동료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심각하게 침해될 소지를 만들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유해진과 김혜수의 열애설이 보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8년 11월 한 스포츠신문에서 유해진과 김혜수의 결혼설을 특종 보도했다. 그렇지만 이 특종 보도는 곧 오보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기사의 핵심은 2009년 5월 결혼설이었는데 두 사람은 지난 해 5월에 결혼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결혼설 뿐 아니라 열애설 자체도 부인했다. 해당 기사를 작성했던 선배 기자는 필자에게 “한 군데서만 확인한 사안을 가지고 특종이라고 보도하진 않는다”라며 “여러 곳에서 크로스 체크를 해서 열애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결혼설 정황까지 잡혀 기사화한 것인데 당사자들이 아니라니 황당할 뿐”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선배는 연예계를 떠났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이번 기사로 당시의 황당함이 좀 누그러졌는지 궁금하다.


열애설 기사는 연예 언론에서 가장 큰 뉴스 가운데 하나로 분류된다. 그만큼 독자들의 관심이 큰 영역이지만 취재 방법이 상당히 애매한 것도 사실이다. 지인 및 측근들의 제보, 데이트 목격자의 증언 등을 종합해 열애설 기사가 보도되는데, 열애설 기사의 속성상 당사자들이 아니라고 하면 이는 곧 오보가 되고 만다. '유해진 김혜수 열애설' 최초 보도가 오보가 됐던 게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열애가 지속돼, 나중에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도 있지만 연애의 특성상 해당 커플이 열애 사실을 부인하다 결국 결별하게 되면 그 기사는 영원히 오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연예인 열애설 기사에서 실제 열애 중인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연예인 입장에서는 열애설 공개에 따른 실익을 따져, 인정과 부인을 결정한다. 실제로 연예부 기자들 사이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과거 사례 가운데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사연도 있다. 90년대 한 언론사에서 연예인 커플의 결혼설을 보도하자 해당 연예인들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며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물적 증거가 없는 해당 기자는 패소했고 수천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두 연예인은 결혼했다. 그러면서 해당 연예인들이 했던 말, “해당 결혼설에 대응하며 소송까지 진행하는 과정에서 애정이 싹터 결혼하게 됐다.” 아! 이를 어쩌란 말인가.

이번 열애설 기사에서 잇따라 특종을 보도한 건  <스포츠서울닷컴>이지만, 한국 언론에서 밀착취재를 주도해온 세력은 사실 여성 월간지였다. 그리고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일요신문> 역시 신문과 잡지의 성격을 두루 갖추고 있어 오랜 기간 밀착취재 기법으로 연예인들을 취재해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성 월간지들이 특종 경쟁을 중단하면서 월간지의 밀착취재 역시 잠잠해졌다. 그러는 사이 <스포츠서울닷컴>이 밀착취재에 올인해, 대표적인 밀착취재 언론사로 자리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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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닷컴>은 지난 2~3년 새 다양한 연예인의 열애설을 보도했고 그 때마다 데이트 현장을 촬영한 사진이 함께 보도됐다. 측근이나 지인의 제보, 데이트 목격자의 증언 등에 머물러 있던 연예인 열애설 기사의 증거에 데이트 현장 사진이 추가된 것이다. 이런 취재 기법을 소위 ‘증거주의 보도’라 부른다.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기사화 하지 않는 영미권 언론사들이 채택하고 있는 취재 방식이다. 이로 인해 해외에는 언론사에 ‘증거’를 제공하는 파파라치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 아직까지 한국 언론은 증거주의 보도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보와 증언만으로 보도된 열애설에 대해 해당 연예인이 이를 인정할 지 아니면 부인할 지를 고민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영미권을 비롯한 해외에선 이런 형태의 증거가 없는 열애설 보도는 존재할 수 없다. 이는 다만 연예부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정치부나 사회부 경제부 등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소식통에 의하면’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으로 불투명한 증거를 기반으로 한 보도를 자주한다. 그러다 보니 확인도 안 된 검찰 수사 내용을 언론에 흘리는 ‘빨대’들이 존재한다. 지난 한 해 검찰 ‘빨대’들이 언론과 여론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두들 기억할 것이다. 물론 해외 언론에서도 ‘소식통에 의하면’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에 따르면’ 등의 표현이 종종 등장하나 이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아직 국내에선 익숙하지 않은 증거주의 보도를 채택한 탓인지 밀착취재 방식은 늘 사생활 논란을 야기하곤 한다. 그런데, 과연 어디까지가 사생활 침해일까. 열애설을 보도하는 것 자체가 사생활 침해일까, 아니면 밀착취재를 통해 열애 장면 사진을 촬영해 보도하는 것이 사생활 침해일까.


유해진과 김혜수는 스스로 밀착 취재를 유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의 열애설 인정 보도 자료가 각 언론사로 발송된 이후 연예부 기자들은 상당한 배신감과 위기감을 가졌다. 당일 오후 만난 몇몇 후배 기자들은 최초로 열애설이 보도됐던 당시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소속사를 통해 열애설을 강력 부인한 두 사람은 이후 영화 홍보를 위해 가진 매스컴과의 인터뷰에서도 거듭 열애설을 부인했다. 심지어 양측 모두 “아무렴 내가 김혜수와 만나겠냐?” 또 “아무렴 내가 유해진과 만나겠냐?”는 반응까지 보였을 정도였다. 그런데 결국 데이트 현장이 촬영된 사진이 공개되며 다시 한 번 열애설 기사가 보도되자 이번엔 열애 사실을 인정했다. 다음은 김혜수의 소속사에서 발송한 보도 자료의 일부.

이번 모 스포츠 신문의 사진과 기사들이 배우나 연예인으로서가 아닌 극히 사적인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들의 사전 확인이나 동의 없이 보도되고, 그로 인해 파생 되는 무분별한 추측성 보도가 이루어진 상황에 대해서는 유감스러움과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 역시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연예인들이 국민들의 관심과 그에 따른 궁금증에 부응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최소한의 프라이버시 역시 보호되어야 한다는 점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맞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만약 그들이 2008년 11월에 보도된 열애설을 떳떳하게 인정했다면 이렇게 언론이 밀착 취재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을까? 만약 이번 보도가 사진없이 다시 증언과 제보 등으로만 구성된 기사였다면 과연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했을까?

결국 이번 유해진과 김혜수의 열애설 공식 인정은 매스컴에게 “앞으로 열애설을 보도하려면 밀착취재를 해서 데이트 현장 사진이라도 한 장 가져와봐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 실제로 <스포츠서울닷컴>이 밀착취재를 통해 연거푸 열애설 보도에 성공하자, 몇몇 언론사에서 비슷한 팀을 구성하려 했다는 소문이 들려오곤 한다. 실제로 팀을 구성했지만 잘 안됐다는 얘기도 있고, 비슷한 팀을 꾸리려다 중간에 계획을 접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번 보도로 인해, 다시 연예 언론이 뒤숭숭해지고 있다. 유해진과 김혜수 커플이 내린 특명(?)에 따라 밀착취재 형태로 연예인의 열애설을 취재하려는 언론사가 급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모든 기자가 연예인들의 특명(?)에 따라 두꺼운 외투와 무릎담요 등을 챙겨, 열애설이 나도는 스타의 집 주변에 잠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유해진과 김혜수가 이번 열애설 보도에 대해,
차라리 앞서 언급한 전설속 90년대 선배 연예인처럼 “2008년 열애설 보도 당시엔 남남이었는데 그 보도에 대항하려고 의논하다가 사랑이 싹텄어요”라는 거짓말이라도 하는 편이 그나마 나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 이 가사에 첨부된 사진은 <스포츠서울닷컴> 사진팀의 허락하에 게재된 것이므로, 무단 전제,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아룰러, 사진을 제공해준 스포츠서울닷컴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posted by leady

2010/01/05 18:49 2010/01/0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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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터앤미디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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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진과 김혜수, 동료 연예인과 연예 언론을 곤경에 빠뜨렸다. 끝까지 열애설을 부인하거나 침묵했어야 한다. 열애를 공식 인정함에 따라 그들은 과거의 해명이 거짓말임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됐을 뿐 아니라, 향후 동료 연예인의 사생활이 심각하게 침해될 소지를 만들었다.

    2010/01/0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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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 전기에 빠지지 않는 사람, 토마스 에디슨. 전구, 축음기 등 인류사를 바꿔 논 수많은 발명품을 남긴 발명가. 인류를 어둠으로부터 해방시킨 그는, 1,000여종이 넘는 발명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런데, 그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남의 영화를 훔쳐 큰 돈을 번 '저작권 도둑'이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모든 위인들이 그러하듯, 후세의 사가들이 '공'만 남기고 '과'를 삭제해 버린 탓이다.

사건은 1902년 프랑스에서 벌어졌다. SF영화와 특수효과의 창시자인 프랑스 영화 감독 '조루쥬 멜리어스'는 그해, 영화사의 신기원을 이룬 '달세계로의 여행'이라는 인류 최초의 SF영화를 만들었다. '달세계로의 여행'은 디졸브, 슈퍼 임포즈 등 오늘 날까지도 사용되는 온갖 특수효과가 최초로 사용된 14분짜리 대작이었다.영화의 러닝타임이 길어야 5분을 넘지 못하던 당시, 멜리어스의 영화 '달세계로의 여행'은 무려 14분짜리 였고, 제작비를 얼마나 썼는지 알 수는 없으나, 러닝 타임과 동원 인원, 대규모 스튜디오 건립과 세트 구성 등을 고려할 때, 오늘날로 치면 블록버스터급 초대작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크린 위를 달리는 기차를 보고 아연실색, 객석에서 비명을 질러대던 당시 관객들에게 SF영화 '달세계로의 여행'은 말그대로 충격 그 자체였다. 영화 전용 극장이 없던 시절, 상영은 오페라 극장이나 대강당을 빌려 진행됐고, 흥행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소수의 부자를 대상으로 한 프랑스내의 흥행은 제작비를 회수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당시, 멜리어스가 노리고 있던 시장은 미국. 그런데...

1902년 '달세계로의 여행'이 한창 상영중인 파리의 어느 극장에 토마스 에디슨의 에이전트 한 사람(누군지 알려지지 않았다)이 있었다. 그는 충격과 환상 그 자체였던 멜리어스 영화의 상업적 가능성을 간파했고, 영화를 보고 나오자 마자 상영기사를 매수해, 프린트 한 벌을 빼돌렸다.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에디슨에게 이 영화의 프린트를 전달했고, 에디슨과 그의 파트너들은 대량의 복사본을 만들어 미국 전역에 배급을 시작한다. 예상대로 흥행은 대박. 박스 오피스 기록이란게 없던 시절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달세계로의 여행'을 관람했는지 알 수 없지만, 요즘 말로 '사상 최고의 흥행 수입'을 기록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프랑스 상영을 마치고, 미국 상영을 준비하던 멜리어스에게 미국 내 흥행 소식은 청천벽력이었다. 영화 저작권에 관한 개념 자체가 희박한데다, 타국에서 벌어진 저작권 침해 사건이었으니, 멜리어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멜리어스는 이 작품 이후, 파산의 길로 접어들고 만다. 역사에서 '만약'만큼 어리석은 질문이 없다지만, 만약, 에디슨이 멜리어스의 영화 저작권을 훔치지만 않았더라면, 시대를 잘 못 타고난 천재 멜리어스는 영화사에 더 많은 '최초'와 '최고'를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멜리어스와 에디슨. 둘 다 천재였지만, 피해자 멜리어스는 영화 필름 몇 편을 남긴 '파산한 영화 감독'이 됐고, 가해자 에디슨은 인류사에 길이 남는 '위인'의 반열에 올랐다. 문화의 상징인 영화와 물질의 상징인 산업의 격돌은 그렇게 시작됐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누군가는 인터넷 산업의 볼모가 되어 '백만 스물 한 번째 멜리어스', '백만 스물 두 번째 멜리어스'로 전락하고 있으니 말이다.
 
posted by PD the ripper
2010/01/04 20:23 2010/01/0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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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터앤미디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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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슨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남의 영화를 훔쳐 큰 돈을 번 '저작권 도둑'이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모든 위인들이 그러하듯, 후세의 사가들이 '공'만 남기고 '과'를 삭제해 버린 탓이다. <멜리어스의 영화 저작권을 훔친 발명가 에디슨>

    2010/01/05 15:42

아바타, 천만을 향해 가다

영화 2010/01/04 09:38 Posted by 3M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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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박스오피스(2010.1.1~1.3)

순위   작품명                    스크린수     주말 관객       관객 누계       개봉일
=================================================================================
1위    아바타                     725        1,245,757        6,386,073      12/17
2위    전우치                     578          800,365        3,255,054      12/23
3위    셜록 홈즈                  374          362,992        1,491,300      12/23
4위    앨빈과 슈퍼밴드 2          269          190,397          295,598      12/30
5위    나인                       366          189,566          283,574      12/31
6위    포켓 몬스터...              66           61,766          255,785      12/24
7위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259           35,231          430,127      12/23
8위    러브 매니지먼트             43            4,848            6,572      12/31
9위    2012                        20            4,761        5,383,005      11/12
10위   위대한 침묵                  6            4,638           28,899      12/03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박스오피스


몇달 전에 한 영화계 인사를 만났더니 그가 대뜸 이런다. "3M흥업 잘 보고 있소. 그런데 왜 요즘엔 박스오피스 기사를 안쓰는 거유? 그 블로그에서 유일하게 볼만한 게 그거였는데." 칭찬인지, 비난인지. 뭐, 여튼 대개가 주관적 관점을 피력하는 글들 사이에서 그나마 객관적 데이터를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글이 스리슬쩍 사라진 것은, 순전히 필자 cinemAgora의 게으름 때문이었다.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가보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박스오피스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게 영 시답지 않은 짓 같기도 해서였다. 하지만, 새해를 맞아 직업적 사명감(?)을 곧추세운 cinemAgora, 다시 박스오피스 글을 쓰기로 했다. 흥행 통계를 놓고도 영화에 대해 '썰'을 풀 수 있는 여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흥행 수치를 통해 어떤 영화가 당대의 관객들과 어떻게 교감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것 역시 영화를 둘러싼 유의미한 논의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어쨌든 새해 첫 주말의 흥행 왕좌는 여전히 <아바타>다. 굳건도 하셔라. 벌써 3주째 1위다. 누계 관객은 이미 600만 명을 넘어섰다. 시간이 흘러도 하나도 시들해지지 않는 흥행세를 보건대, <트랜스포머>가 가지고 있는 외화 최고 흥행 기록(750만 명)을 넘어서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다. 일각에선 은근히 천만까지 넘보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일단 다음달 설 명절 시즌까지는 이렇다할 만한 대형 기대작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도 천우신조다. 잘 만든, 그리고 의미도 있는 영화가 대박 흥행을 기록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내가 <아바타>의 흥행 행진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이유다.  

<전우치>의 흥행세도 나쁘지 않다. 300만 명을 넘어섰다. 손익분기점이 450만 명에 이른다니 좀더 분발해야 할 판이긴 하지만 말이다. 관객들로부터 썩 좋은 입소문을 확보하는 데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일단 <아바타>와 더불어 '묻어가기' 흥행 전략이 그럭저럭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모양새다. 일찍이 <두사부일체>나 <색즉시공>같은, 특히 윤제균 감독의 초기작들이 <반지의 제왕>에 묻어가기 흥행 전략으로 쏠쏠한 성적을 거둔 바 있다.

연말에 합류한 작품 가운데, 롭 마샬 감독의 <나인>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서 니콜 키드먼까지, 초호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전작인 <시카고>만큼의 반응을 이끌어내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 뮤지컬 특유의 쾌감을 전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람 난 영화감독의 고뇌를 담아낸 통속 스토리가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바람난 남자는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의 흥행세가 좀 아쉽다. 좀더 들만한 작품이라고 믿었는데, 테리 길리엄의 연출 호흡이 아무래도 낯선 측면이 없지 않아 그런 건지, 히스 레저의 유작이라는 마케팅 포인트마저 별로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나는 이 영화가, 판타지로 판타지의 본질을 말하는 영화라고 봤다. 인간의 상상력과 그 반영물로서의 판타지는 결국 현실의 공포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욕망의 소산이라는 것.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판타지 안에는 그 공포가 그림자처럼 드리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 사실 그렇게 관객들의 판타지를 깨우는 판타지 영화 치고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경우가 많지 않다. <판의 미로>나 <더 폴>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꿈에서 깨고 싶지 않고, 영화는 여전히 꿈을 배달해야 한다는 믿음이 대세인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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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4 09:38 2010/01/0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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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가요대축제 vs. NHK 홍백전

방송 2010/01/04 09:22 Posted by 3M흥업
이제는 그러려니 해서 별반 시비 거는 사람도 없지만, 그래도 끝끝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믿고 또 한번 밀어붙여 본다. 바로 지난 연말 한일 양국의 공영방송이 마련한 가요쇼 얘기다. 하나는 KBS '가요대축제'이고, 하나는 NHK의 '홍백가합전(이하 홍백전)'이다. 두 프로그램을 비교해보려는 것은, 양국 가요계의 현주소를 가장 극명하게 엿볼 수 있는 기회이자, 이른바 '공영'을 표방한 방송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까지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보기 때문이다.  

핵심은 출연진이다. 우선 KBS 가요대축제에 출연한 가수들의 면면을 보자. 편의상 출연진을 특성에 따라 분류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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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또는 걸그룹

슈퍼주니어, 2PM, 소녀시대, 2NE1, 샤이니, 카라, 브라운 아이드 걸스, 4MINUTES, 다비치
솔로가수
박진영, 손담비. 백지영, 이승기, MC몽, 김태우, 케이윌, 이승철, 신승훈, 김건모 밴드 또는 그룹
리쌍, 장기하와 얼굴들


다음, NHK 홍백전의 출연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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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또는 걸그룹
아라시, SMAP, 동방신기, AKB48, NYCBoys
솔로가수
aiko, 아야카, 안젤라 아키, 오오츠카 아이, 기무라 카에라, 코다 쿠미, 나카시마 미카, 하마사키 아유미, 미즈키 나나, 도쿠나가 히데아키, 후쿠야마 마사하루, 유스케
밴드 또는 그룹
이키모노 가카리, GIRL NEXT DOOR, DREAMS COME TRUE, EXILE(이상 팝그룹), 앨리스, 레미오 로멘, flumpool, 포르노그라피티(이상 록그룹), 고부쿠로, 유즈(이상 포크 듀오), FUNKY MONKEY BABYS(힙합)
엔카 또는 성인가요
아키모토 준코, 이시카와 사유리, 가와나카 미유키, 고다이 나츠코, 고바야시 사치코, 사카모토 후유미, 덴도 요시미, 나카무라 미츠코, 미즈모리 카오리, 와다 아키코, 이츠키 히로시, 기타지마 사부로, 기타야마 다케시, 제로, 히카와 키요시, 후세 아키라, 호소카와 다카시, 미카와 켄이치

*동방신기는 일본에서 아이돌이 아닌 팝유닛으로 분류되지만, 한국의 기준을 적용해 아이돌 범주 안에 배치했다.


출연진의 규모 차이는, 러닝타임(NHK홍백전은 무려 4시간이 넘게 진행된다.)의 특수성 때문이라 그러려니 하겠지만, 일단 출연진의 구성만 보더라도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딱 봐도, '가요대축제'는 아이돌과 걸그룹에 치중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신승훈이나 김건모, 이승철 등 중견 솔로 가수들이 출연하긴 했지만, 그나마 아이돌과의 제휴 무대라는 형식으로 얼굴을 비쳤다. 여기에, 지난 해 가장 뜬 인디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출연시킴으로써 구색을 맞추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가요대축제는, 한마디로 '아이돌과 걸그룹을 위한 잔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NHK 홍백전은 아이돌과 걸그룹보다, 가창력을 인정 받는 솔로 가수들에 더 큰 비중을 할애했으며, 중장년층 시청자들을 고려해 엔카와 성인가요 가수들도 대거 배치했다. 라이브로 연주와 노래를 들려주는 밴드와 그룹들의 비중이 높은 것도 주목할만하다.

아이들이나 걸그룹의 매니지먼트 방식이 많은 부분 일본에서 벤치마킹한 현상이라고 본다면, 이건 뭔가 주객이 뒤바뀐 듯한 인상을 준다. 한국 공영방송의 가요대축제는 아이돌이 장악하고 있고, 정작 아이돌의 본고장인 일본의 공영방송은, 대중음악의 여러 분야를 최대한 아우르려는, 음악적 다양성을 실천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대목에선 분명히 이런 반론이 제기될 게 빤하다. 가요 시장의 지형도가 그런 걸 어찌하겠느냐는 거다. 맞는 말이다. 가요 시장의 지형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방송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방송이 그렇게 언제까지나 시장의 상황, 조장된 대중의 기호에만 영합한다면, 우리는 그 방송에 '공영'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 NHK 홍백전의 기준을 따르자면, KBS 가요대축제에는, 이를테면 조용필이나 신중현, 송창식, 산울림 같은 가수들이 출연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미자나 패티김까지 무대에 올린다면 금상첨화일테고.

가요 시장이 아이돌과 걸그룹으로만 천편일률적이고 획일적으로 흐르는 현상을 개탄하는 이들 가운데는, 결국 시장 규모 때문이라는 자포자기적 분석을 내놓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일본만 해도 다양한 음악을 소비할 수 있을만큼의 시장이 형성돼 있는 반면에 한국은 한 곳으로의 쏠림 현상이 워낙 심한데다, 주류 트렌드의 음악이 아니면 다른 분야의 소비자층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거다. 간단히 말해 '후진적'이라는 얘기다.

역시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래서 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공영방송은, 그 노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마인드와 책임감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KBS는 해외 공영방송의 사례를 배우기 위해 연수도 많이 보내는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배워 온 것을 좀 증명하기를 바란다. 방송 독립을 위해 싸우는 것도 좋지만 문화적 견인차로서의 '좋은' 방송을 고민하는 것도 공영이 할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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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4 09:22 2010/01/0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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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밤의 '단비' 를 보며 느낀 씁쓸함

방송 2009/12/29 13:47 Posted by 3M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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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밤이 모처럼 야심찬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아프리카의 물부족 지역에 우물을 파주는, 이른바 '단비' 프로젝트다. 과연 감동적이다. 하지만 나는, 보는 내내 삐딱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이른바 생활보호대상 가구였다. 겨울이면 동사무소에서 라면을 준다고 불렀고, 꼬마였던 나는 생계에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라면을 받으러 가곤 했다. 문제는, 그냥 주면 될 걸 꼭 무슨 무슨 단체장들이 나와서 사진을 찍는거다. 내가 불쌍하게 생긴 꼬마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나는 그들이 한껏 자애로운 표정으로 건네는 라면을 받으며 사진 촬영에 임해야 했다. 가뜩이나 주눅든 마음에 자존심까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건 지금까지도 큰 상처로 남아 있다.

어려운 나라에 가서 도와주는 일은 장려해야 마땅한 일이다. 단비 프로젝트도 그런 면에선 칭찬 받을 일이로되, 꼭 이런 방식이여야만, 우리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건가, 어쩔 수 없는 쓸쓸함이 몰려 온다.

지리산고를 나와 서울대에 들어간 켄트를, 다른 나라도 아닌 바로 자신의 출신 국가에 대동하고 나선 것부터 거슬린다. 그를 마치 코리안 드림을 이룬 사람으로 추켜 세우지만, 이제부터 너의 그 후진적인 모국에 우리가 자애를 베풀어줄게, 라는 제스처로 보이는 것 같다. 나는, 어릴 적 내가 그랬던 것처럼 켄트의 자존감이 혹 상처라도 입지 않을까 걱정된다.

십여년만의 엠씨 등극에 흥분한 김현철은, 현지의 참담한 상황보다 엠씨로서의 역할 수행에 더 몰입해 있는 듯 하고, 카메라는 예쁜 울보 한지민의 눈물 가득찬 표정을 자주 비춤으로써, 시청자들의 동정심을 이끄려 애를 쓴다. 이런 거야 애초부터 연예인을 파견한 버라이어티쇼의 한계이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다른 설정들도 눈에 거슬리는 건 마찬가지다.

특히 그들에게 짜파게티를 끓여 주며 한껏 뿌듯해하거나, 연기자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 보이는 한국 동요 퐁당퐁당을 그 지역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장면에선 정말이지 내가 다 민망해졌다. 이건 아니잖아? 싶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선 1950년대 한국전쟁기에 미군차량을 좇으며 기브 미 초콜릿, 기브 미 검 하며 달겨들던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중첩됐다. 그 때 그 아이들은 미군의 시혜에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감사를 느꼈을까?

누군가를 진정으로 도우려면 그들 문화에 대한 존중심과 이해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열악하다 할지라도 그들이 삶을 일구는 방식과 현장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 단비 프로젝트에는 그 대신, 우리도 이제 이 사람들을 귱휼히 여기고 베풀 수 있는 위치에 놓였다는, 알량한 자부심이 더 크게 엿보인다. 그래서 끝내 이 프로그램의 진정성이 와 닿지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건,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쌀집아저씨' 김영희 피디, 혹은 그가 속한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쉬는 동안 아프리카 오지를 돌아다녔다는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깊은 성찰 없이 곧바로 아주 매력적으로 보이는 장삿거리를 생각해냈기 때문이다. 동정심 장사.

그래서 그에게, 우리도 원조를 받았으니 이제 원조하자는 식의 국가주의적 캠페인 말고도, 서구인들이 우리에게 보냈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그대로 내면화해 제 3세계에 반사하는 방식 말고도, 그들의 절절한 고통을 인류애적 차원에서 가장 겸손하게 나눌 수 있는 방식을 더 고민하라는 주문이, 별반 쓸모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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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9 13:47 2009/12/29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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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살떨리는 배우들의 스펙터클

영화 2009/12/28 10:02 Posted by 3M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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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액기스는 볼거리보다 이야기라고 틈날 때마다 강조했던 나도, 딱 하나 굴복할 수밖에 없는 볼거리가 있다. 바로 사람의 아름다움이다. 사람 자체가 볼거리가 되고 스펙터클이 될 때, 나는 사족을 못쓰고 빠져든다. 내겐 롭 마샬의 신작 뮤지컬 영화 <나인>이 바로 그런 영화다
.

상상만 해보시라. “어쩌면 저토록 멋지게 늙어갈 수 있단 말인가!”라는 감탄이 절로 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주인공이다. 그의 주변을 미녀들이 감싸는데 이 사람들이 그냥 미녀가 아니다. ‘요부연기만큼은 현대 영화계에선 그 누구의 추종도 불허하는 스페인의 페넬로페 크루즈. 정숙과 도발을 오가는 프랑스의 마리옹 꼬띨라르. 그리고 할리우드의 별 니콜 키드먼과 엄청난 가창력을 과시하는 케이드 허드슨. 블랙아이드피스의 보컬 퍼기. 영국의 연기파 주디 덴치와 전설의 이탈리아 배우 소피아 로렌까지.

이런 사람들이 장면마다 번갈아 가며, 전문 가수들의 뺨을 세게 후려치는 솜씨로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데, 애간장이 타 들어가다 못해 녹아 드는 게 당연한 노릇인 것이다. 그렇게, 영화 <나인>은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뭐 하나 빠지지 않는 배우들을 한 다발로 묶어 놓고 관객들의 시선을 강력하게 사로 잡는 영화다. 사실, 뮤지컬의 팬이든 아니든,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흡인력은 이미 차고도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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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영화계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의 내용은 자못 통속적이다. 잘 나가는 영화 감독 귀도는 창의력이 말라 붙어 각본도 쓰지 못한 채 새 영화의 제작에 착수해야 할 처지다. 머리가 아픈 그는 기자회견 도중 다른 도시로 피신하고, 정부인 칼라(페넬로페 크루즈)를 불러내 철 없는 밀회를 즐기다, 아내 루이사(마리온 꼬띨라르)에게 딱 걸리고 만다. 이 와중에 새영화의 주연으로 낙점된 여배우 클라우디아(니콜 키드먼)가 촬영장에게 도착하고 그때까지 대사 한줄 건져내지 못한 귀도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인다.

귀도의 상황은 정숙한 아내와 농염한 애인을 동시에 갖고 싶은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대변한다. 영화는 귀도의 좌충우돌하는 삶 속에서 종종 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고뇌를 만들어낸 근원적 결핍을 엿보도록 만든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철부지 어린이처럼 되어가는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욕정이 빚은 덫이며, 창작자가 처해 있는 보편적 아이러니를 역설한다.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의 동력에 의해 달려온 이 예술가는, 결국 그 안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바보로 전락하고 난 뒤에야 절규한다. “내가 모든 것을 망쳐 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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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카고>로 뮤지컬 대가의 반열에 오른 롭 먀살 감독은, 거대한 라스베거스 쇼 무대를 보는 듯한 현란한 관능의 무대를 연출하며, 귀도의 판타지를 표현한다. 사실, 그것은 관객들의 판타지이자 욕망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껏 만족시킨 뒤, “자 이제 정신 차릴 시간입니다하며 귀도와 관객들을 차가운 현실로 돌려 세우지만, 이미 한바탕 폭풍 같은 관능의 축제를 즐긴 여운은 뜨겁게 남는다. 12월 3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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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10:02 2009/12/2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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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t;나인&gt;은 원작과 어떻게 다른가?

    Tracked from 영상인문제작소 이닥  삭제

    새해를 맞이해 금요일에 올리던 영화리뷰가 확장되어 금요일,토요일에 올라갑니다. 좀 더 많아질 영화 리뷰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피곤함을 풀어줄 영화?? 어제 밤 영화 세미나 팀원들과 새벽까지 영화 3편을 연달아 보았습니다. 융통성이 없는 성격인지라 잘 시간에 잠을 못자면 다음날을 그대로 망치는 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블로그에 <나인>에 관한 리뷰를 올리기 위해 연신 하품을 하면서 아트..

    2010/01/0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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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바타>의 흥행세가 그야말로, 대쪽 갈라지는 모양새다. 모처럼 <반지의 제왕>에 필적하는 겨울철 대박 영화에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니 벌써 400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인터넷을 통해 감지되는 관객들의 반응도 대체로 찬사 일색이다.

<
아바타>에 대한 평가가 궁금해 주요 블로그들을 돌아다녀봤는데, 일부 블로그에서 꽤 흥미로운, 비판적 시각들이 눈에 띄었다. 영화가 개봉 전부터 워낙 많은 기대감을 품게 한 탓에, 상대적인 실망감을 느끼는 분도 있을 수 있겠다 싶었으나, 몇몇 관점에 대해선 반론을 제기하고 싶어졌다
.

일단 영화가 구현하고 있는 시각적 성취에 대해선 대개가 동의하는 분위기니 접어두겠다. 이 포스트는 영화 <아바타>가 담고 있는 세계관에 대해서만 논의의 초점을 국한하려고 한다
.

우선, 나는 <아바타>와 관련해 이 블로그와 네이버 영화평란에 다음과 같은 단평을 실은 바 있다

"영화 <아바타> 2시간 42분의 러닝 타임 내내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시각 혁명의 현장 자체이며, 분별력 있는 현실 인식을 담아낸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한 모험극이다. <아바타>는 자본과, 기술, 재능이 가장 행복하게 만난 사례이자 영화사의 기원을 바꾼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여기서 내가 분별력 있는 현실 인식이라 말한 것은, '판도라와 그 토착민 나비족' '판도라를 침공하는 지구인'의 대결, 또는 갈등 구도의 상징성 때문이었다. 그 상징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Cinema Blues N님이 '아바타 단평'이라는 포스트에서 너무나 통찰적으로 서술해 놓았으니 한 대목을 여기 옮기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할까 한다.

"<
아바타>는 인류가 '문명화, 근대화'의 이름으로 침략과 전쟁을 자행했던 이른바 '식민지 근대'의 역사를 혹독하게 비판하며 자연 속에서의 공존을 강조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

나는 이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아마도 많은 평자들도 그러한 것 같다. 다만, "문명화와 근대화의 이름으로 침략과 전쟁을 자행"했던 '주체'와 관련해 조금 더 첨언하자면, 나는 그것을 '서구제국주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판도라는 서부 개척기의 아메리칸 인디언일 수도, 베트남일 수도, 최근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일 수도 있을 것이며, 제국주의 다툼 속에서 유린 당해 아직까지도 기아와 분쟁에 휘말려 있는 아프리카 대륙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며, 친미 군부 독재에 시달리던 남아메리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판도라는 더 나아가 제국주의적 야심에 의해 타자화된 모든 대상을 상징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어쨌든, <아바타>는 자본/군사/근대화/문명과 소통/교감/자연/사랑의 이항대립을 통해 역사적 성찰과 환경주의를 한 그릇에 퍼 담는 야심을 선보이고 있는 셈이다
.

근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문명화/근대화의 이면에 에너지와 자원, 개발 이권을 향한 자본과 국가(군대)의 결탁, 과학의 미필적 동조가 도사리고 있었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한편엔 첨단 과학, 또 한편으로는 해병대의 간접 지원을 받으며, 에너지 체취에 혈안이 돼 있는 거대 기업을 설정한 <아바타>는 제국주의가 작동한 메커니즘을 판도라라는 가상 공간을 통해 그대로 재연해 보이고 있다
.

시야를 좀더 좁히더라도, <아바타>는 최근 미국의 외교 노선에 대한 더욱 노골적이고도 직설적인 비판을 담아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판도라 '침공'에 앞서 해병대원들을 독려하는 쿼리치 대령의 이 한마디는 꽤나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We will fight terror with terror!"

영화는 이를 "우리는 그들(나비족)에게 공포를 선사할 것이다"라고 번역해 놓았지만, 말 그대로 "테러에는 테러로 맞설 것이다"라는 뜻이다. 뭔가 느낌이 확 와 닿지 않은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 삼은, 지난 정권기 미국식 일방주의의 핵심을 이 대사 한마디로 정확하게 찌르고 있는 셈이다.

다른 주요 영화관련 블로거들도 대개들 이런 해석의 틀로 <아바타>를 논하고 있는 듯 보였는데, 물론 해석이 대동소이하다고 관점이 같은 건 아니다. 앞서 말한 나의 관점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견해는 크게 두 가지다
.

우선, 이 영화의 메시지와 극 전개 방식이 별반 새로울 게 없다는 시각이다.

블로그 '영화진흥공화국' 이규훈 님의 지적은 이렇다.  

"이 영화는 감독 스스로 매우 풀기 어려운 아니 어쩌면 풀 수가 없는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화면 하나하나가 화사한 색감을 자랑하며 반짝반짝 빛나기까지 하는 이 영화에서 감독은 인간의 탐욕과 자본의 폭력성을 다루고있는 것이다."(중략) "이미 많은 영화와 도큐멘터리가 인간의 탐욕과 자본의 폭력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관객들과 함께 고민하고자 했고, 많은 관객들도 이에 대해 공감하고 분노하고 고뇌하다가 마땅한 답이 없음에 안타까이 답답해했던 문제를 이런 오락영화에서 다시 들고 나와서는 어설픈 결말로 허탈하게 마무리 짓는 건 참으로 무책임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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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가 담고 있는 꽤 중층적인 해석의 결을 '인간의 탐욕과 자본의 폭력성'이라는 말로 두루뭉술하게 개념화하는 데 선뜻 수긍할 수 없는 것 말고도, 새롭지 않다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라고 본다. 아무리 많이 다뤄져온 것이라 해도, 그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나는 그것을 계속 되풀이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문제에 "공감하고 분노하고 고뇌하다가 마땅한 답이 없음에 안타까이 답답해" 하는 관객들이 생각만큼 그리 많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 반대의 생각, "근대화는 (그것이 서구 중심의 이데올로기와 함께 이식된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밥과 풍요를 가져다 주었으며, 인간의 탐욕은 필요악이며 자본은 친절하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사한 색감"과 "반짝 반짝 빛나기까지 하는" 오락영화가 이러한 주제를 담는 것을 역차별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평자의 인식 안에서 주제의 진중함과 오락영화의 가벼움이라는 고정관념 간의 분열이 일어났음을 말하는 것이다.
논점은, 일부 문화 엘리트들에게만 새롭지 않은, 그러나 여전히 유효한 주제를 자신에게 주어진 표현의 틀을 활용해 얼마나 새롭고도 참신한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느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바타>는 시각 혁명이라는 '감각적 미끼'를 최대치로 활용해 '올바름'이라는 지성적 메시지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내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 멋지지 않은가! 그토록 한심무쌍했던 할리우드 오락영화 안에 드디어 지성이 녹아든 것이다!

둘째, 역사를 반성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역시나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견해다
.
블로그' 달콤한 인생'은 이렇게 쓰고 있다.

"인디언 보호구역에 갇힌 한줌의 인디언 부족들이 백인들의 온정에 감사하며 살아가듯, 나비족 역시 죽음의 문턱에서 전향한 지구인의 손길이 없었다면, 고스란히 멸망할 뻔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 역시 반성을 가장한 백인들의 영웅 놀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안고 있다. 그 한계를 거대한 깊이감이 느껴지는 3D 영상으로 가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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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반성을 가장한 백인들의 영웅놀음"이라고 비판하는 시각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끝내 동조할 수 없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나비 족에 침투한 아바타가 백인이라는 이유가, 영화의 메시지가 무의미다하고 치부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만약 어느 페미니스트가, 전근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을 보며 여성을 왜 저따위로 종속적으로 그렸냐고 비판 한다면, 우리는 그가 지나치게 경직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사적 장치를 무시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모든 것을 꿰어 맞추려는 꼴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영화 <아바타>에선 인종간 대립이 아니라 문명간 충돌이 주요 플롯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서 주인공의 인종이 하필 백인이라는 것을 끄집어내 이것을 한계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게 아니냐는 얘기다. 더 중요한 것은, 영화의 정치적인 태도를 결정하는 '시점'이다. 감독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라고도 볼 수 있는 제이크는, 지배자의 시선으로 출발했다가, 점점 더 나비 족에 교화되며 끝내 그들의 편, 자연의 편에 선다. 그리고 영화가 후반부로 가면서 시점이 이동한다. 제이크의 시점은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의 시점이 되며, 관객들 역시 그들의 시점에서 저 끔찍한 판도라 공습 장면을 공포스럽게 목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런 것을 간과한 채 <아바타>를 백인의 영웅놀음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평자의 인식 속에 쳐놓은 오락영화 또는 백인영화의 울타리 안에 영화를 가둬놓으려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타자화'가 아닐까
.

문화적 다양성은, 피할 수 없는 한계 안에서도 빛을 발하는, 어떤 미덕을 발견하고 가치를 부여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바타>가 적어도 <트랜스포머>보다 훨씬 더 훌륭한 오락영화이고, 제임스 카메론은 마이클 베이보다는 백 배 정도 괜찮은 백인이라고 믿는다. 미국에는 부시도 살지만, 노암 촘스키도 산다.

posted by cinemAgora

2009/12/28 09:55 2009/12/2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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