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파가 진짜 인디를 걱정한다면...

음악 2009/12/10 13:04 Posted by 3M흥업

10년 전쯤, 한 인기 아이돌 그룹의 공연 도중 펜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일부가 다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당시 나는 강남경찰서를 출입하는 YTN 사건 기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같은 경찰서를 출입하던 한 공중파 방송국의 기자와 이런 농반 진반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 “데스크가 저녁 뉴스 꼭지로 보도하라네요. ‘아이돌 그룹의 인기 지상주의가 빚은 해프닝으로 몰아갈까 해요.”
: “, 아이돌 그룹 인기 지상주의에 영합한 장본인이 늬들 아냐? 공중파 쇼 프로그램은 다 걔들이 도배하잖아.”
: “에이, 선배. 그거야 쇼 프로그램이고, 뉴스는 뉴스가 할 일을 해야지요.”
: “, 그럼 늬네는 뉴스 할 때만 언론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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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밤 KBS 2TV한밤의 문화산책이라는 심야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뜬금없이 10년 전의 이 대화가 떠올랐다. ‘한밤의 문화산책은 연말 특집의 일환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도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는 인디음악 신을 소개하고 있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나오고, 크라잉 넛이 나오고, 좋아서 하는 밴드의 고군분투가 소개됐다. 프로그램은 말미에 소녀시대와 원더 걸스를 비추며 천편일률적인 음악이 인기를 얻는 상황에서 오로지 음악성으로 승부하는 인디 음악의 진심이 좀처럼 빛을 발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는 듯한 멘트로 결말을 지었다.

의미 있는 기획이라는 데 이견을 달 여지는 없다. 그러나 나는 공중파 방송국이 이런 프로그램을 내보낼 때마다, 이것이 문화적 다양성을 잊지 않고 있다는 일종의 생색용 알리바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앞선 대화 내용을 여기에다 적용해 본다면 나는 이렇게 따져 묻고 싶다. “당신들은 문화 산책할 때만 인디를 돌보고 대중음악을 걱정하는가?”

여전히 공중파 쇼프로그램은 아이돌과 걸그룹에 의해 굳건히 장악돼 있다. 공중파 쇼프로그램에서 인디 음악이 소개될 수 있는 시간은 내가 알기론 EBS스페이스 공감이 사실상 유일하다.

적지 않은 음악 평론가들이 지금의 주류 가요계를, 이토록 천편일률적으로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한 장본인으로 공중파 쇼프로그램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류 음악계가 인디신으로부터 새로운 피를 수혈받는 것을 미필적 고의로 막아온 공범 또는 주범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구조적 모순, 즉 국내 가요계의 여러 산적한 문제점들 속에서 음악 프로그램이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하는지부터 진지하게 되묻고 시청자들과 공유하는 게 순서다. 그리고 먼저 솔선수범해, 인디 신을 제대로 대접하는 무대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그들 가운데 진짜 실력자들을 스타로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해야 한다. 아쉽게도, 우리의 공중파 방송국들은 생색 내기에는 익숙할지언정 스스로에 대한 자성을 표출하고 실천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

posted by cinemAgora

2009/12/10 13:04 2009/12/10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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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rl Jam <Backspacer>
- ★★★★
이 앨범에는 덜 조여진 나사 하나 없다. 힘이 넘치면서도 넓고 유려하다. 대가만이 묘사할 수 있는 여유와 관조까지 넉넉히 갖췄으면서도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눈매를 잊지 않는다. 여기에 절정에 다다른 밴드 하모니까지 정확하고 품이 깊은 이 작품은 2009년 록 계의 ‘토템 폴’(totem pole)에서 당당히 맨 윗단을 차지할 것이다.

13 스텝스 <Existence> - ★★★
한국 하드코어 신이 음악적으로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쾌작. 'Runner's High'로 일관하는 격렬한 연주 하모니가 듣는 이의 넋을 쏙 빼놓는다. 앞으로 섬세한 구성미만 갖춘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듯. 

G-Dragon <Heartbreaker> - ★★☆
특출하다 말하기 어려운 음악적 성취에 비해 너무 과도한 피드백들. (표절 여부를 떠나) 게으른 창작이 야기했던 수많은 논쟁들. 테크놀로지의 과잉이 낳은 컨텐츠의 부재. 결국 한국 가요계의 문제점을 압축적으로 전시해준 2009년의 우울한 발견.  

Placebo <Battle For The Sun> - ★★★☆
여전히 어둡고 여전히 격렬하며 여전히 매혹적이다. 강렬한 파토스(pathos)가 지배하는 이 앨범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아닌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우물 13개를 지닌 작품이다. 그러나 끝이 없을 것 같은 우물 속 과녁을 끝끝내 찾아내 그 핵심을 맞춰버리는 놀라운 집중력의 앨범이기도 하다. 이처럼 개별 곡마다의 정중앙에 진한 방점을 찍어나가는 방법론을 통해 플라시보는 자신들의 디스코그라피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두점을 하나 그려냈다. 

홍경민 <Someday> - ★★★
어쿠스틱으로 전향해 톤을 낮추고 볼륨도 줄였다. 세월이 녹아든 담백한 사운드의 첫인상이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러나 너무 힘을 빼다보니 전체적으로 고만고만한 트랙들 일색이 되어버렸다. 그 사이에서 돋을새김으로 방점을 찍을 킬러 싱글만 있었더라도 인상이 확 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뚝심 있게 자기만의 영역 찾고자 하는 노력은 평가받아야할 앨범이다. 

크라잉넛 <불편한 파티> - ★★★☆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크라잉넛은 이걸 아주 잘 알고 있는 그룹이다. 후련한 펑크 록 사운드, 싸구려 같아서 더욱 애절하게 다가오는 유랑단적 감수성. 전자가 단단한 리듬의 뼈대를 형성한다면 후자는 크라잉넛만의 독특한 멜로디 라인과 가사를 만들어낸다. 이번 음반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잘 알고 있고,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크라잉넛이다. 그러면서도 전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10년 이상 단련된 밴드 하모니가 모든 곡에서 완숙의 경지를 뽐내는 덕분이다. 이번에도 역시, 이 노래들을 공연장에서 들을 날이 기다려진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크라잉넛은 이 앨범을 통해 공연장에서 다가올 완성형을 모색하고 있다. 그래서 (앨범의 평점과 상관없이) 공연장에서의 그들은 언제나 10점 만점에 10점.

posted by 순타기

2009/09/28 01:18 2009/09/28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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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구비 완료했지만, 이제야 비틀즈(The Beatles)의 리마스터링 음반들을 하나씩 듣고 있습니다. 바쁜 일이 겹쳐서 꼼꼼히 듣지 못하다가 차분한 마음으로 비틀즈의 명곡을 탐사하고 있으니, 흡사 아방궁에 온 기분이네요. 빛나는 명곡들의 파노라마에 지쳐있던 심신이 온기를 회복하는 느낌입니다. 

여기서 잠깐. 고백을 하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오디오 마니아형 평론가와는 거리가 먼 스타일입니다. 집에 있는 기기도 미니 컴포넌트를 쓰고 있고, 조금 비싼 헤드폰을 연결해서 음악을 듣는 정도죠. 하지만 큰 불편함은 없습니다. 진정으로 좋은 음악은 언제나 사운드 퀄리티를 뛰어넘는 법이니까요.(라고 변명을 해봤지만 큰 위안은 되질 않네요.)

사실 비틀즈의 음악들이 리마스터링되어 얼마나 음질이 좋아졌는지, 정확하게 분석할 능력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물론, 사운드가 좀 더 생생해진 것만은 확실히 알겠더군요. 막귀를 자처하는 저도 이럴 정도니, 섬세한 청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그 차이가 더 확연하겠지요. 그런데 문득, 9시 뉴스에서까지 보도하고 있는 비틀즈 광풍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신곡도 하나 없고, 보너스 컨텐츠가 많은 것도 아닌데, 왜들 이렇게 열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팝 시장이 예전에 죽었다고 평가되는 한국에서마저 이 리마스터링 세트 5만조가 단번에 완판되었다고 합니다. 올드 팬들이 이 5만이라는 숫자의 대부분이었다면 이 현상이 일견 이해가 갔을 겁니다. 그들에게 비틀즈는 잊을 수 없는 청춘의 일부분이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10대와 20대 초반의 어린 세대들마저 비틀즈에 대해 한마디씩 거들고, 돈이 없어 구입을 못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는 게 흥미롭습니다. 이 친구들에게 비틀즈는 영화 [로큰롤 인생]에 나오는 ‘노인 밴드’나 다름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제가 틀렸던 걸까요. 비틀즈의 음악이 클래식에 비견될 정도로 그 우수성을 공증받기는 했지만,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비틀즈와 같은 불멸의 존재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요. 오늘 집으로 천천히 걸어오면서 저는 팬들과 매체 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비틀즈의 진가를 먼저 알아본 건 순수한 음악 팬들이었습니다. 1960년대 초반, 비틀즈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기 이전부터 그들이 클럽에서 연주하는 날에는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국지적 팬덤을 글로벌화하기 위해서는 팬들의 서포팅 이상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매체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지는 거죠.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언제나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매체들이 많아야 시장이 활성화되고, 전체적인 레벨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꿰고 있는 이 바닥의 상식입니다. 해외에는 이런 매체들이 아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죠. 미국의 롤링 스톤(Rolling Stone)이나 영국의 NME(New Musical Express) 등이 대표적입니다. 두 잡지 모두 오랜 역사를 통해 자국은 물론이고 전세계 음악 신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죠.

둘 중 NME 같은 경우에는 조금만 음악 잘한다 싶으면 무조건 ‘Next Big Thing’이라며 뻐꾸기 세례를 날립니다. 이른바 ‘차세대 거물’이라는 거죠. 물론 이 중에 진짜 거물로 성장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 유명한 NME 특유의 호들갑 평론이죠. 하지만 이런 적극적인 자세가 영국 음악 신을 풍성하게 가꿔왔음을 부인할 순 없을 겁니다. 그래서 최근 등장한 좋은 록 밴드들 중에는 영국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심지어 킬러스(The Killers), 스트록스(The Strokes) 같은 미국 밴드들도 모국이 아닌 영국에서 먼저 그 장래성을 캐치하고 매체들마다 적극적으로 리뷰를 게재했죠. 그리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둘 모두 현재 최고 인기 그룹으로 떠오르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요. 위에서 언급한 롤 모델과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최근의 표절 논란만 해도 그렇죠. 표절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공교육 탓일까요. 팬들은 표절 여부를 떠나 자신의 우상을 보호하기에 급급합니다. 우리 오빠 음악만 좋으면 됐지 뭔 상관이냐는 어투로, 지적하는 사람을 맥 빠지게 만드는 허무 신공은 이제 더 이상 놀랄 것도 없을 지경입니다.

매체는 어떤가요. 전체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어떤 매체는 ‘팬들의 사랑이 표절 논란마저 잠재워버렸다!’. 이런 황당한 기사를 자랑스럽게 실어내더군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 참고로 저는 지금 (여러분들이 짐작하고 있을 그 곡이)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표절은 친고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원작자의 고소가 있어야 효력이 발생되니까요. 다만, 가요계 일부의 돌아가는 상황이 여전히 수준 이하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겁니다. 

지금 말씀드린 예시가 한국 가요계 전체의 고질병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팬들과 매체들, 더불어 기획사들이 상식적인 도덕률을 회복하지 않는 이상, 몇 십 년이 지난 후에도 열병처럼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전설적인 아티스트는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얼마 전 동방신기가 수난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걸 보면서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미친듯한 머니 게임 속에서 음악적인 논쟁은 단 한 톨도 없다는 거죠. 해외에서는 걸핏하면 음악적인 견해차로 헤어지는데, 그게 오히려 부러울 정도였습니다. 사족이지만 한류 열풍 어쩌고 할 때도 돈 소리는 지겹도록 들었는데, 음악에 관한 건 잡담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던 것 같네요.  

앞으로 큰 병에 안 걸린다면 제 인생이 50년쯤 남았다 치고, 그 전에 비틀즈처럼 영생을 누릴 본좌급 뮤지션을 우리나라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는 예감이 사라지질 않습니다. 정치만 그런 게 아닙니다. 가요계에도 상식이 통하는 시대가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 대단한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이게 왜 이리 힘든 걸까요.

posted by 순타기


2009/09/15 10:22 2009/09/15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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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은 악마? 그시절의 추억

음악 2009/08/04 09:54 Posted by 3M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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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미국 출장을 다녀오신 아버지가 선물로 테이프를 하나 사오셨다. “지금 제일 잘 나가는 뮤지션의 음반 하나 주세요.” 레코드 가게 점원에게 얘기했더니, 이 앨범을 추천했다고 하면서 나에게 건네주셨다. 때는 1988년.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Bad] 앨범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을 시절이었다.

아버지에게 받자마자, 카세트 플레이어에 앨범을 플레이했다. 처음 보는 흑인이 ‘배드~배드~나빠~나빠~’하는데, 뭐가 나쁘다는 건지 초등학교 5학년생이 알아먹을 리가 만무했다. 심지어 4번 트랙 ‘Liberian Girl’은 너무 야하기까지 했다. 여성의 끙끙대는 신음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이걸 계속 들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심각하게 고민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TV로 영상을 봤다. 공연 실황이었다.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마이클 잭슨의 패션은 항상 하반신에 정조대 비슷한 걸 강조하는 게 특징이었다. 그 부분이 유독 반짝거리는 것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춤을 출 때마다 유사(類似) 정조대 부분에 위치한 자신의 급소를 계속 만지작거리는 게 거슬렸다. 도저히 부모님과 함께 볼 수 있는 수위가 아니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없을 때마다 몰래 혼자서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잊을 만하면 ‘아~ 씁~’하면서 거친 숨을 내뱉는 마이클 잭슨의 목소리도 문제였다. 당시 다녔던 교회 목사님이 ‘마이클 잭슨은 악마’라면서 ‘들으면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라고 왜 말씀하셨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목사님에게는 대중음악이라는 문화 자체가 사탄의 표상이었던 거였다. 심지어 이 분은 ‘뉴에이지(New Age)는 마귀의 자식’이라며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의 [December] 앨범 화형식까지 거행하셨던 적도 있었다. 참, 대단한 분이셨다.

이렇게 마이클 잭슨의 음악은 마치 내가 아담이라도 된 듯, 금단의 열매로 다가왔다. 그 땐, 나름 충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이 괴상한 음악을 그만 들을까 말까 고민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 끝내주는 음악을 거부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걸작 [Thriller]을 찾아들었고, ‘Billie Jean’의 문워크 댄스와 밴 헤일런(Van Halen)이 연주한 ‘Beat It’의 기타 연주에 넋을 잃었다. [Dangerous] 음반도 대단했다.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기타리스트 슬래시(Slash)가 연주한 ‘Black Or White’와 ‘Give In To Me’는 물론이고, ‘Will You Be There’를 듣고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가스펠 팝’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는 내가 느끼고 있는 마이클 잭슨의 매력이 뭔지를 잘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 때까지 들은 거라곤 찬송가나 팝과는 거리가 먼 가요들밖에 없었으니, 마이클 잭슨 음악의 요체를 파악할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여러 음악을 듣고 나니,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완벽한 사운드의 황홀경, 환상적인 리듬 잔치, 잭슨 파이브 때부터 단련된 빼어난 가창력, 중력을 거부한 경이적인 댄서, 흑인의 자부심을 일깨운 최고의 팝스타 등등등.

이상한 일이다. 말발은 이렇게 확 늘었는데, 어린 시절 그의 음악을 들으며 느꼈던 두근거림을 이제 더는 느낄 수가 없다. 마이클 잭슨뿐만이 아니다. 매달 밥을 굶어가며 CD를 샀던 과거의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렇게, 등가교환의 법칙은 참으로 준엄하다. 알게 모르게 작동해서 보란 듯이 우리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야 만다. 나는 음악에 대한 순수를 내준 대신, 음악에 대한 직업을 얻었다.     

얼마 전, MBC에서 마이클 잭슨 관련 특집을 두 번 방송했다. 한번은 그의 공연 실황이었고, 또 한번은 영결식 녹화방송이었다. 두 방송의 스크립트를 작성하면서 그의 멋진 퍼포먼스에 또 다시 감탄했고, 영결식을 보면서는 남세스럽게 눈물까지 흘릴 뻔했다. 특히 영결식이 압권이었다. 처음 마이클 잭슨의 관이 등장했을 때 합창단이 불렀던 흑인 영가, 어셔(Usher)가 노래했던 ‘Gone Too Soon’,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가 선사한 ‘Never Dreamed You'd Leave In Summer’와 ‘They Won't Go When I Go.’ 모든 곡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흠뻑 적셨다.

그 중에서도 흑인 합창단의 가스펠이 단연 최고였다. 일이 다 끝나고, 시간을 두고 가사 하나하나를 곱씹어보니, 왜 그 노래를 선곡했는지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제목은 ‘Soon And Very Soon’이다.

“곧, 정말로 곧, 우리는 바다로 갈 것이네. 왕이 계신 그 곳으로. 눈물을 흘릴 필요도, 슬퍼할 필요도 없지. 우리 모두 그곳에서 곧 만날 거니까.”

노예 생활을 하며 흘렸던 흑인들의 고된 땀방울, The King Of Pop의 때 이른 죽음, 사자(死者)를 떠나보내는 남겨진 자들의 슬픔. 더럽혀짐을 알고 있으면서도 끝끝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자들의 견딜 수 없음. 그 모든 결정체들이 이 노래 속에 녹아있었다.

못 보신 분들을 위해 팁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 ‘유튜브’(Youtube)에서 ‘Michael Jackson Soon And Very Soon’이라고 치면 동영상을 볼 수 있으니, 꼭 한번 검색해보기 바란다. 진실한 음악이 주는 감동을 정말 오랜만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순타기

2009/08/04 09:54 2009/08/0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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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이클 잭슨과 친형님을 평생 괴롭힌 ‘백반증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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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백반증에 대한 오해와 진실! 말로 표현하지 못한 그들의 아픔과 고통! 지난 6월 25일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그를 애도하는 전 세계의 팬들이 안타까움을 표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이클 잭슨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제 친형님입니다. ‘백반증’이라는 질병 때문입니다. 멜라닌 세포 파괴로 인해 온 몸에 여러 가지 크기와 형태로 백색 반점이 피부에 나타나는 탈색소성 질환입니다. 형님을 보았을 때 온 몸..

    2009/08/05 10:06

대박난 영화 OST의 뒷이야기들

음악 2009/07/08 13:07 Posted by 3M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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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관객은 영화 속 상황에 딱 들어맞는 음악을 통해서, 영화 속 스토리와 배우의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 따라서, 대박난 영화는 반드시 대박난 영화음악을 남긴다. 더불어, 대박난 영화의 OST는 당연하게도 풍성한 뒷이야기를 남기기 마련이다.

영화 사상 가장 극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인생역전 스토리는 바로 '록키'. 실베스타 스텔론이 각본에 감독, 주연까지 맡아서 초대박이 난 영화 '록키'는 영화가 제작될 당시, 무명 감독에, 무명 배우가 출연하는 저예산 영화였다. 그러니, 영화음악 역시 유명한 아티스트의 몫이 아니었다. 제작비의 한계를 고려한 제작사는 당시 무명이었던 '빌 콘티'라는 작곡가에게 음악을 맡긴다.

1976년 영화가 개봉된 후, '록키'는 영화사에 기념비적인 기록들을 세우게 되고, 심하게 표현하자면, '뒷골목 거렁뱅이' 수준이었던 실베스타 스텔론은 인생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었다. 무명 작곡가 빌 콘티 역시 '록키'의 메인 테마로, 록키 시리즈를 상징하는 음악인 'Gonna Fly Now' 등이 담긴 음악들이 히트를 하면서, 일약 유명 작곡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후, 빌 콘티는 1983년 영화 '필사의 도전'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고, 각종 영화와 TV 드라마 OST 음반만 800만장이 팔아치운 할리우드 대표 음악가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 

어디 빌 콘티 뿐인가? 무명 밴드였던 '서바이버'는 '록키3'에 삽입된‘eye of the tiger’ 한 곡으로 전세계 투어를 진행하는 인기 밴드로 발돋음 하게 된다. 그 인기가 얼마나 강렬했던지, 지금도 TV에서 권투하는 장면만 나오면, '서바이버'의 목소리가 지겹도록 흘러 나오지 않나. 사실 따지고 보면, 그룹 '서바이버'는 '록키' 때문에 먹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바이버'의 히트곡이라고는 영화 록키의 OST 였던 ‘eye of the tiger’와 'Burning Heart', 단 두 곡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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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하면, 흔히 작곡가나 가수를 떠올리지만, 특이하게도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감독이 있다. 바로, 영화 감독 '왕가위'. 영화 '중경삼림'에 삽입된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g'을 떠올려 보라. 음악에 맞춰, 앙증맞고 귀엽게 몸을 흔들어 대던 왕정문에게 매혹된 관객들은 앞 다퉈 레코드점으로 달려갔고, 한 물, 아니, 두 물은 훌쩍 가고도 남은 '마마스 앤 파파스'의 먼지 쌓인 앨범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영화 ‘중경삼림’의 인기 덕분에, 사실상 해체 상태였던 '마마스 앤 파파스'가 급조된 밴드를 이끌고 내한 공연까지 다녀갔으니,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이 갈 듯.

영화 감독 '왕가위'는 탁월한 선곡과 독특한 화면 구성 덕분에 영화는 망해도 OST는 잘 팔리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최근에 듣자하니, 왕가위 감독은 요즘도 잘 팔리는 영화 OST 덕분에, 매년 회사 운영비를 능가하는 거액을 벌고 있다고. 죽은 밴드도 벌떡 일으켜 세운 감독이니, 어련할까.

한국 영화의 OST에도 당연히 대박 신화가 있다.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최고의 기록은 영화 '접속'의 OST로, 1998년 당시 60만장이 팔렸다. 박찬욱 감독의 '단짝'으로 유명한 조영욱 음악 감독의 작품인 영화 '접속'OST는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정식 사용료를 지불하고 OST를 정식 발매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접속'OST의 성공은 '약속', '정사', '쉬리',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팝송을 삽입곡으로 사용한 OST의 또다른 성공을 불러온 이유이다.

1999년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삽입곡인 비지스의 'Holiday'는 2005년 영화 '홀리데이'에 다시 한 번 삽입되면서 뒷이야기를 남긴다. 이명세 감독이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제작 당시, 삽입곡 사용을 꺼리던 비지스를 설득하기 위해 직접 찾아가 읍소한 일은 유명한 일화. 이명세 감독의 정성과 열의에 감동(?)한 비지스는 구체적인 액수를 밝히기에도 민망한 소액만을 받고 사용권을 넘겨줬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대박 영화의 반열에 오르면서 OST 역시 손에 꼽히는 대박 OST의 반열에 등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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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05년 또다시 한국에서 영화 삽입곡으로 'Holiday'를 사용하겠다고 하자,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OST의 예기치 못한 성공에 열받은(?) 비지스는 12만 달러(당시 환율로 1억 2천만원)을 요구했고, 협상을 통해, 9만달러로 최종 낙찰. 그러나, 영화 '홀리데이'의 참패로, 비지스의 'Holiday'는 제값을 못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만다. 2005년 당시 영화사가 비지스에게 지불한 1곡 사용료 9만달러는 당분간 깨지기 힘든 최고가 기록이 될 전망이니, 이래 저래 속쓰린 대목이다.

posted by PD the ripper

2009/07/08 13:07 2009/07/08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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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ill Conti - main theme of North & S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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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사극에 걸맞는 음악이 뭔지 알고 싶은가? 이 곡을 들어보라.<남과 북North & South>은 1980년대 미국의 작가 John Jakes가 집필한 3부작 대하소설의 제목이며, 소설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 미니시리즈의 제목이기도 하다.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남부와 북부 출신 두 사관생도의 우정을 다룬 이 소설은 1985년에 제 1부, 1986년에 제 2부가 ABC-Tv를 통해서 방영되었는데, 지금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2009/07/09 10:47
  2. 대박난 영화 OST의 뒷이야기들

    Tracked from 케이블 TV를 즐기는 101가지 방법  삭제

    &nbsp; &nbsp; 우리들 마음속에 남아있는 영화음악, 한두곡은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음악이 빠지면 영화보는 재미가 반으로 줄어드니까요. 그 가운데 록키, 중경삼림, 접속, 홀리데이등의 영화 속 음악에 담긴 뒷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2009/07/10 03:53

'빌리진'이 예견한 마이클 잭슨의 불행

음악 2009/07/02 21:01 Posted by 3M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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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마이클 잭슨을 있게 한 곡은 단연 '빌리 진(Billie jean)'이다.  '비트 잇(Beat it)', '드릴러(Thriller)'와 함께 1982년 발표된 드릴러 앨범 수록곡 '빌리 진(Billie jean)'은 오른손의 흰장갑과 중절모, 문워크 댄스로 전세계인들에게 각인됐다. 당시, 한국인들도 강렬한 비트와 파워가 넘치는 춤사위에 열광했고, 소년들은 틈날 때마다 그의 노래와 춤을 따라했다. 그 시절에 유년기를 보낸 나는 쉬는 시간 마다 교실에서 문 워크를 했던 친구들의 모습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다들 알다시피 '빌리 진(Billie jean)'의 가사는 요즘 말로 '원 나잇 스탠드'라 불리는 치기의 하룻밤으로 생긴 아이를 부정하는 내용이다. 빌리 진 이라는 소녀가 데리고 온 자신의 눈을 닮은 아이. 빌리 진은 나의 연인이 아니라고, 그 아이 역시 나의 자식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법정에서 조차 인정해 주지 않는 상황에 빠져 절규하는 내용이다. 후렴구에서 마이클 잭슨은 '빌리 진은 내 연인이 아니야(Billie Jean is not my lover)... 그 아이는 내 자식이 아니야(But the kid is not my son)'라고 외친다.  
   
팝송이었기에 망정이지, 1982년 한국 가수 누군가가 '빌리 진(Billie jean)'의 가사로 노래를 발표했다면, 당연하게도 군사정권의 서슬 퍼런 검열에 걸려 금지곡이 됐을게다. 사실, 군사정권이 국내 가요의 가사만을 트집 잡진 않았다. 팝송 역시 정권의 검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오늘날, 명곡으로 추앙받는 핑크 플로이드의 '어나더 브릭 인 더 월(Another Brick In The Wall)'은 교육과 통제를 부정하는 가사가 불온하다는 이유로, 퀸의 명곡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는 가사가 선정적(도대체 어느 부분이 선정적이란 건지는 몰라도)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묶었던 시절 아닌가. 어쨌든, 다행히도 마이클 잭슨의 노래들은 검열의 칼날을 피해 한반도를 휩쓸었다.    

그런데, 외신에 따르면, 마이클 잭슨 사망 이후, 여기 저기서 '숨겨진 부인'임을 주장하거나, 마이클 잭슨의 아이가 자신이 낳은 아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온단다. 그 소식을 듣고, 유년기 추억이 담긴 그의 뮤직 비디오를 다시 보니, '빌리 진'의 가사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말년에 연인과 아이에 관한 숱한 소문에 시달렸던 마이클 잭슨이건만, 사후에도 '빌리 진은 내 연인이 아니야(Billie Jean is not my lover), 그 아이는 내 자식이 아니야(But the kid is not my son)'를 외쳐야 하는 그의 불행이 마치 예견된 것 처럼.

* 사족 : 오랫만에 마이클 잭슨의 뮤직 비디오를 보니, 과거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사실들이 보이더라. '빌리 진(Billie jean)'의 상징인 문 워크 댄스는 정작 뮤직 비디오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 뮤직 비디오 속, 마이클 잭슨은 흰 장갑 또한 끼고 있지 않다. 유일하게 등장하는 소품인 중절모는 마이클 잭슨이 아니라, 그를 추격하는 추적자가 쓰고 있을 뿐이다.    

posted by PD the ripper
2009/07/02 21:01 2009/07/0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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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을 보내며

음악 2009/06/29 02:33 Posted by 3M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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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나 마이클 잭슨이다. 라디오를 틀어도, 클럽에 가도 귀에 익은 마이클 잭슨이 흘러 나온다. 금요일 밤 들른 클럽에서 'Billie Jean'을 틀길래 나는 술 친구들에게 아는 척을 했다.

" 저 노래 무슨 내용인지 아세요? 저게 말이죠, 빌리진이라는 여자애가 자꾸 마이클 잭슨을 스토킹하는 거야. 아이가 하나 있는데, 그게 마이클 아이라고 우기는 거지. 그래서 마이클 잭슨은 절대 그런 일 없었다, 빌리진은 내 애인도 아니고, 그 아이도 내 애가 아니다, 이렇게 절규하는 내용이랍니다."
 
듣고 있던 친구들이 그런다. "참 어이 없는 내용이군요."

그 렇다. 마이클 잭슨은 그렇게 '어이 없이' 80년대를 강타했었다. 잭슨 파이브 시절 그 청아하고도 천사같은 목소리의 소년 마이클이 아니라, 허리 아래를 가만 두지 못해 어쩔 줄 모르고, 흰색 장갑을 낀 큰 손으로 벨트 아래를 어루만지는, 살벌하게 불온한 청년 마이클로 돌아온 것이다.

그가 이룬 음악적 성취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문외한인 내가 논할 수 없으되, 아무튼, 가히 뮤직비디오의 혁명이라고도 일컬을 수 있는 'Beat It'과 'Billie Jean', 그리고 'Thriller'를 통해 그가 보여준 시청각적 충격만큼은, 단번에 전세계인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는 깡패들의 패싸움 현장에서 현란한 춤사위로 화해를 부추기고, 심지어 땅 밑에서 올라온 좀비들과도 춤을 췄다.

그는 엉덩이를 박자에 맞춰 앞 뒤로 퉁기는 사뭇 음란해 보이는 동작이 거꾸로 꽤 세련돼 보일 수도 있음을 증명한 최초의 엔터테이너였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문 워크의 창시자이기도 했다. 마치 발에 바퀴가 달린 듯 플로어를 미끄러지며 뒤로 가는 동작이었는데, 이것만으로도 80년대의 적지 않은 10대 청소년들의 신발을 닳게 만들었다.(나는 특히 그가 제기 차듯 허공을 발로 차는 동작을 사랑했다.) 그는, 거리의 춤을 가장 화려하게 무대화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선보였던 장본인이었다. 마이클 잭슨의 등장은, 이른바 스트리트 댄싱의 전세계적인 유행을 선도했다.

그의 전성기가 나의 10대 시절과 중첩돼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마이클 잭슨이 갖는 문화적 함의는 더욱 각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돌이켜 보면, 그는 80년대의 억압적 분위기에서 나풀나풀 벗어나고 싶은 당대 한국 대중의 욕망과도 꽤 잘 맞물렸던 것 같다. 미국 또는 팝 하면 백인을 먼저 생각하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백인보다 백 배는 더 멋진 흑인 영웅의 탄생이 주는 묘한 쾌감이 남달랐던 것이다. 버젓이 브라운관을 타고 흐르는, 그의 불온하고도 음란하며 도발적인 몸짓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에선 '해방'이었다.

그 뒤로 이어진 마이클 잭슨의 생애는 모두가 알다시피, 영욕의 점철이었다. 날기를 소망했지만 끝내 추락하고 만 이키루스의 운명을 닮았다. 그 와중에 그의 영혼과 육신 여기저기에 깊은 상처가 패였다. 한때 그의 날랜 육체로 피를 나르던 심장이 불현듯 박동을 멈췄다.

영웅은 시대의 상처를 껴안고 간다고 하던가. 육신에서 벗어난 마이클 잭슨이, 동시대인들에게 그가 안겨준 어떤 쾌감만큼, 진정한 해방의 안식을 얻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posted by cinemAgora
2009/06/29 02:33 2009/06/29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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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이클잭슨 얼굴, 어떻게 변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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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있는 전설, 팝의 황제... 그리고 흰둥이가 되고 싶어했던 불행한 흑인, 마이클 잭슨이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이다. 생전 갖가지 기행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노래들은 누가뭐라해도 명곡들이었다. 빌리진, 힐 더 월드, 마이클잭슨만 부른 건 아니지만 위아더 월드, 쓰릴러...... 뭐 셀 수도 없고 다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많다. 그의 명복을 빈다. 참고로, 그의 얼굴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게티이미지 코리아 블로그에서..

    2009/07/01 07:14

안녕...커트 코베인...

음악 2009/04/30 09:12 Posted by 3M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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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는 항상 우울하다. 만우절에 가버린 장국영에 대한 감상이 잊혀 질 때쯤이면 1994년 4월 8일 자신의 머리에 총탄을 박아 넣은 그런지의 왕 커트 코베인의 기일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미 14년이나 흘러버렸지만, 그의 음악이 심장을 뚫고 지나갔던 왕년의 청춘들에겐 여전히 어제 일처럼 느껴지는 사건이다. 비록 스스로는 닐 영의 곡 <My my hey hey>의 가사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를 마지막 인사말로 남기고 팝 역사에서 영원한 신화가 되어버렸지만, 시간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우리들에겐 고통스런 기억이다. 슬픈 청춘의 날들을 같이해준 친구를 잃은 날이기 때문이다.


구스 반 산트의 <Last days>가 상영되었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잡지와 신문의 이 곳 저 곳에서 커트 코베인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일종의 다짐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2008년 오늘엔 그런 모습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팍팍한 일상을 살아가는 왕년의 청춘들이 이제 그를 잊어가는 것은 아닐까? 마치 어릴적 친구들과 몇 년 씩 전화 한 통, 술 한 잔 기울일 시간 갖지 못한 채,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 것처럼. 그러다 아주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어느 날, 서로의 볼에 깊게 패인 주름자국을 쳐다보며 삶의 덧없음을 경험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형식적인 조문 하나 없이 조용히 너무도 조용히 흘러가는 4월의 초입에 너바나의 [Nevermind] 앨범을 찾아 자동차의 CD 플래이어에 걸어놓았다. 팝 칼럼니스트만의 분양소를 마련한 셈이다. 원시적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기타 인트로와 함께 절망에 찬 커트 코베인의 음성이 쏟아져 나온다. <Smells like teen spirit>을 지나 <Come as you are>를 거쳐 <Polly>에 이르자 ‘91년 군에서 첫 휴가를 나왔던 그 때로 되돌아갔다. 떠난 여자 친구가 선물했던 커플링을 소주잔에 던져 놓은 채 거리로 나섰던 기억. 부산의 광안리까지 한 번도 쉬지 않은 채 차를 달리던 기억. 싸늘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해돋이를 배경 삼아 김민기의 <친구>를 흥얼거리던 기억. 커트 코베인의 목소리는 알라딘의 램프처럼 잃어버렸다고 여겼던 기억들을 자유자재로 불러내고 있었다.


카뮈는 이렇게 말했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쉽게 지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의 말대로라면 사라진 커트 코베인은 아직도 모순으로 가득찬 삶과 투쟁중인 것이며 남겨진 우린 비굴한 투항을 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죽음이 없었다면 인간은 누구도 철학을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쇼펜하우어의 일갈을 빌리면 우린 커트 코베인의 죽음을 통해 14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개똥철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관성 없는 상념들이 한동안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생각해보면, 사라진 것은 커트 코베인만이 아닌 것 같다. 그 때, 그의 음악을 같이 듣고 헤드뱅잉을 감행하던 그 많은 청춘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모처럼 맘먹고 홍대의 클럽에 들어가도 동년배의 누군가를 만나기 불가능해진 지금 <Smells like teen spirit>에 아드레날린 쏟구치던 그 인간들은 다 어디에 숨어버린 걸까?


맥주 몇 캔에 취기가 돌기 시작하던 4월 8일의 저녁,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그러나 꽤 오래 전화 한 번 하지 않았던 옛 지우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냈다. ‘4월 8일 커트 코베인의 열 네 번 째 기일...’ 술기운에 타협하고 잠에 빠져들 때까지 몇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나 아무런 답 문자도 받을 수 없었다. 안녕 커트... 안녕 청춘이여... 

2009/04/30 09:12 2009/04/3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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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계의 아버지', 이주노를 만나다

음악 2009/04/03 13:53 Posted by 3M흥업

3M興業/mgoon 공동 기획 인터뷰

지난 3일, 서울 청담동의 뮤지컬 연습실에서 이주노를 만났다. 이태원을 휩쓸던 춤꾼 이주노. ‘서태지와 아이들’로 더 이상 오를 데 없는 정상에 자리 잡았던 그는,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음반 기획과 솔로 데뷔 등 굴곡 많은 삶을 헤쳐 나와 뮤지컬 ‘이주노의 빨간 구두’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뮤지컬 홍보를 위해 몇 건의 인터뷰를 진행했으나, 정작 기사는 이주노의 사업 실패와 수십억 원에 달하는 빚에 초점이 맞춰져 당혹스러웠다는 홍보 담당자의 쓴 웃음을 뒤로하고 만난 그는, 세간의 시선과는 달리 활기차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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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굉장히 바빠 보이는 데, 잠잘 시간도 없는 것 아닌가?
 

A. 뮤지컬 음악 작업을 하고 오는 중인데, 시간이 얼마 안남아서 조금 바쁘다. 요즘에는 서너시간 정도 밖에 자질 못한다. 그래도,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다.

Q. 오랜만의 복귀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방송환경에 적응하기가 녹녹치 않을 것 같다. 

A.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이 많아서 별 어려움 없이 적응하고 있다. 잘 모르는 아주 어린 친구들하고는 그냥 인사만 한다.

Q. 뮤지컬 ‘이주노의 빨간 구두’는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굳이 본인의 이름을 넣은 이유가 있나?

A. 관객들에게 컨셉을 명확히 전달하려는 의도였다. 그냥 뮤지컬 ‘빨간 구두’가 아니라, ‘이주노의 빨간 구두’라고 하면, ‘춤’이 중심이 된 ‘넌버벌 퍼포먼스’라는 콘셉트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관객들 한테서 ‘이주노가 만들었다는 데 왜 저래?’라는 얘기를 듣지 않을 자신이 있다.

Q. 뮤지컬 오디션에 참여한 후배들이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더라. 부담스럽진 않나? 

A. 전혀.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한때, 최정상에 섰던 이주노는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음반 기획과 솔로 데뷔의 길을 걸었다. 음반 기획자로 변신했던 초기, ‘영턱스 클럽’으로 잠시 성공의 길을 걸었지만, 후속작의 연이은 실패와 솔로 데뷔 음반인 ‘바이오닉 주노’의 실패로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다. 게다가, 연이은 사업 실패로 수십억 원에 달하는 빚까지 떠안고 절치부심 했다는 사실이 최근에 알려져 다소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그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Q. 요즘 후배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A. 예전에 비하면 환경이 정말 좋아졌다. 좀 억울하다는 생각도 한다. 내가 춤을 배우던 시절에는 인터넷은 커녕 VTR도 없던 시대 아닌가? AFKN(주한미군방송)을 보다가 새로운 춤을 발견하면, 오로지 기억력에 의지해 따라 배우곤 했다. 누구에게 물어 볼 수도 없고, 그 춤이 언제 또다시 방송되는 지 알 수도 없고...

Q. 80년대 말쯤 부터는 MTV 뮤직 비디오를 틀어주는 음악 카페가 있지 않았나?

A. 그건 한참 후의 일이고, 내가 춤을 배운 건 1982년 부터다. 보고 따라할 게 없었다. 오죽했으면, 그림을 그렸겠나? 만화(애니메이션)를 그리듯이, 노트에 연결 동작을 한 장씩 그려서 빠르게 넘기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그걸 보고 동작을 따라 배우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윈드밀(헬리콥터의 프로팰러처럼 몸을 회전시키는 댄스의 한 동작)’ 완성하는 데, 3년 정도 걸렸다. 요즘 후배들은 선배들 한테 배우고, 동영상도 있으니, 보름이면 익히더라.

Q. 그렇게 배울 사람이 없었나?

A. 있긴 있었다. 가끔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온 주한 미군의 자녀들 한테서 배우기도 했다.

Q. 그때 함께 춤 추던 친구들은 아직도 활동 하나?

A. 생각해 보니, 나만 남은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춤 추는 것 만으로는 생활이 되질 않으니, 다 떠나고 나만 남았다.

Q. 춤은 몸으로 하는 거라, 나이가 들면 안되는 것도 있을 것 같은데...

A. 안되는 건 없다. 젊을 때는 힘으로 추지만, 나이가 들면 기술로 춘다.

Q. 요즘 춤을 보면, 새로운 게 없는 것 같다. 사실, ‘비보잉’은 80년대 ‘브레이크 댄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보이고, ‘테크토닉’은 ‘허슬’의 변형인 것 같다.

A. 맞다. 둘 다 80년대의 춤을 변형한 것들이다. 하지만, 새로운 춤이 안나온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락킹, 팝핀 등 언더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춤을 추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한국의 댄서들은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춤을 계속 만들어 낸다.

Q. ‘서태지와 아이들’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A. 얻은 게 거의 다고, 잃은 건 없다고 봐야 겠지. 과분하게 많은 것을 누렸던 때였다. 굳이 잃은 걸 꼽자면, 호화로운 삶을 살다보니, 어렵게 춤을 배우던 때의 ‘정신’을 잃었던 건 아닐까 싶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없었다면, 더 치열하게 춤추면서 살았을 수도 있으니까.

Q.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굴곡이 많았는 데,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A. 아쉬운 건 없다. 하고 싶은 건 모두 다 했으니까. 내 경우, 자기만족이 더 중요하다. 그냥 내가 만족할 만큼 힘들고 치열하게 했으면 된 것 아닌가?

Q. 아무리 그래도 솔로 데뷔작 ‘바이오닉 주노’의 실패는 아쉬웠을 것 같은데...

A. ‘바이오닉 주노’는 내가 너무 앞서 갔던 거다. 대중이 원하는 이주노는 다른 모습이었는 데, 너무 일찍 시작했던 것 같다.

Q.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음반을 내 볼 생각이 있나?

A. 하고싶은 때가 오면 할 생각이다. 꼭 ‘바이오닉 주노 2’가 아니더라도,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Q. 그게 언제일까? 당신이 무대에 서는 걸 본지가 너무 오래된 것 같다. 꼭 노래가 아니더라도 무대에서 춤추는 당신을 볼 수는 없나?

A. 공식적인 무대가 2000년이 마지막이었으니, 꽤 오래되긴 했지만, 아직은 무대에 설 계획이 없다.

Q. 이번 뮤지컬 ‘이주노의 빨간 구두’에서 잠깐이라도 무대에 설 수도 있지 않나?

A.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 이번 뮤지컬은 후배들의 무대이지 내 무대가 아니다. 기획, 연출자로서의 내 역할에만 충실할 생각이다.

'아버지 이주노’. 힙합바지에 모자를 눌러 쓴 청년들은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뮤지컬 ‘이주노의 빨간 구두’의 오디션에 참여한 그들의 멘토는 오로지 ‘이주노’인 것처럼 보였다. 지금의 그들과 같은 나이에 ‘춤’ 하나로 이태원을 휩쓸고 다녔던 시절의 이주노에게는 그저 몸뚱아리 하나 뿐이었다. 거리를 전전하며 춤을 추고, 누군가의 무대를 ‘장식’하는 백댄서의 고단한 삶을 거쳐 정상에 올랐던 이주노. 그가 인터뷰 도중 가장 두 눈을 반짝였던 순간은 거리를 떠돌며 춤을 추던 ‘헝그리 댄서’ 시절의 에피소드를 털어 놓을 때였다.



2009/04/03 13:53 2009/04/0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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