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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 1등은 했지만

영화 2010/04/09 09:56 Posted by 3M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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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박스오피스(2010.4.2~4)

순위   작품명                   스크린수         주말 관객      누계 관객
-------------------------------------------------------------------------
1      타이탄                    723               929,995      1,079,123
2      육혈포 강도단             342               140,890        909,740
3      그린 존                   301               103,817        492,103
4      셔터 아일랜드             258                89,323        898,762
5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24                46,959      2,113,540 
6      폭풍전야                  158                27,542         34,404
7      비밀애                    288                17,986        151,716
8      의형제                    140                13,135      5,442,964
9      아마존의 눈물              59                 9,193         52,859
10     솔로몬 케인               215                 8,288        122,081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지난 주 네이버와 3M흥업에 올린 <타이탄> 프리뷰를 통해 "괜히 돈 쓰지 말고 그냥 2D로 관람하시라"고 말했지만 별로 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새삼스럽지만, 대다수 관객들은 평문 따위는 미리 읽지 않는데다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기대를 배신하는 정보를 수긍하려 들지도 않는 경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D 소스를 3D로 뻥튀기한 이 영화가 천연덕스럽게 <아바타>가 만들어 놓은 3D 거품에 편승해 관람료를 더 챙기려는 속셈을 부릴 수 있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주 3M흥업의 최대 유입 검색어는 '타이탄 3D 상영관'이었다. 그만큼 <타이탄>을 제 2의 <아바타>로 기대하고 있는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아바타>의 샘 워싱턴이 나오는데다, 그리스 신화의 모험 스펙터클이니 자동연상적으로 그런 기대를 불러 일으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예상했던대로 이 영화를 3D 상영관에서 본 많은 이들이 네티즌 평점을 통해 저주를 쏟아내는 상황이 연출됐다. 프리뷰에서도 언급했듯 영화 자체는 썩 나쁘지 않다고 본 나로선 씁쓸한 풍경이다. 화면의 입체감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자 영화가 갖는 다른 미덕도 한꺼번에 무시 당하는 현상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처럼 영화의 형식이 기대를 배신했을 때 영화 자체가 쓰레기가 되는 상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퍼포먼스 캡쳐 애니메이션임에도 실사 영화로 착각하게 만든 <베오울프>나 <해리포터> 류의 아동 모험 판타지로 오인한 관객들의 저주 세례를 받은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가 대표적이다.

이런 경우엔 정확하게 말해 잘못은 영화가 아니라, 영화에 대한 엇나간 기대를 품게 만든, 그러니까 유통이나 마케팅 과정에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말하자면 관객들에게 엉뚱한 기대를 품게 해 구매 행위의 착오를 일으키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관객들은 나와 맞지 않는 상품을 구매했다가, 반품도 안되는 그 상품이 원래 질이 형편없었다고 폄훼해 버림으로써 엇나간 구매 선택을 정당화하려 들기 일쑤다. 문제는 결국 영화 그 자체가 정당한 평가의 도마 위에 오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장사 논리는 이처럼 영화를 쉽게 모욕한다.

[관련글]
짝퉁 3D '타이탄', 그래도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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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9 09:56 2010/04/0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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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음악 깨나 듣는 친구들 사이에선 '롹'('록'이라고 표기하는 건 어쩐지 맛이 안나 많은 이들이 발음하는 데로 표기함을 양해바란다.)이 대세일 때가 있었다.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고, 블랙 사바스의 "She's gone'의 가사쯤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부를 줄 알아야 대화에 낄 정도였다. 롹은 젊은 에너지의 상징이었으며, 불온한 일탈을 향한 욕구의 폭발이었고, 시답지 않은 기성 질서에 대한 저항의 코드였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거창한 것이고, 아무튼 70-80년대 젊은이들에게 롹만큼 음악 다운 음악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데블스와 신중현, 그리고 산울림으로 그 계보를 이어오던 한국의 롹은 80년대 중후반 ‘시나위’와 ‘들국화’의 잇단 출연으로 한때 전성기를 맞은 듯했지만, 90년대 이후 이른바 주류에서 이탈했다. 그것이 자발적인 이탈인지, 아니면 음악 산업의 논리에 밀린 어쩔 수 없는 탈락이었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롹은 홍대를 중심으로 한 인디신에서만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다. 최근에야 ‘크라잉 넛’이나 ‘노 브레인’ 등의 롹 스타들이 출연하고, 펜타포트 페스티벌 등이 큰 호응을 얻으며 재도약의 호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 엿같은 나라에는 로큰롤 스타가 필요하다"는 도발적이고도 선언적인 문구로 시작되는 자칭 ‘로큐멘터리’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이런 한국적 롹의 지형도 속에서 ‘뭔가’를 위해 꿈틀대는 두 밴드를 중심에 세운다. 한 팀은 폭발적인 라이브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갤럭시 익스프레스‘. 그리고 또 한 팀은 감독 백승화 자신이 드러머로 속해 있는 ’타바코 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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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인천 모텔촌 한가운데 뜬금 없이 마련된 라이브 클럽 ‘루비살롱’에서의 인연을 단초로, 감독은 두 밴드의 좌충우돌과 성공 가도의 풍경을 근거리에서 포착한다. 감독이 밴드의 일원이라는 점은, 멤버들의 가장 원초적이고도 솔직한 모습을 담아낼 수 있는 무기가 된다. 카메라는 무대 뒤에서 혹은 잦은 술자리에서 동료 멤버를 향해 혹은 카메라를 향해 거침 없는 육두문자를 내뱉는 멤버들의 ‘로큰롤’적 삶의 단면을 별 기교도 없이 품는다. 어쩌면 그게 이 거친 호흡의 음악 다큐멘터리가 지닌 최고 미덕일지도 모른다.

자주 술에 취해 있는 이들의 허랑방탕한 대화를 통해, 비록 이들이 굳이 강조하는 바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어떤 음악적 진정성을 껴안으려는 이들 뮤지션의 치열함을 엿본다. 그러나 그것이 주류적 의미에서의 열심을 다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타바코 쥬스의 보컬 권기욱은 “열심히 안하면 안될 것 같아. 근데 우리는 열심히 안하잖아. 그래서 안될 것 같아”라며 눙치지만, 신들린듯한 이들의 무대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열심이란 그냥 음악적 신명의, 롹의 힘에 포획되고 마는 어떤 것이라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이 관객들에게 전하는 롹의 정체이자, 롹커의 진면목이다.

모처럼 롹 밴드들의 활약상을 담은 음악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짧은 공연 장면을 빼곤 음악이 좀더 전면에 나서지 못한 것은 일말의 아쉬움을 남긴다. 물론 기술적, 재정적 한계 때문이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래도 “우리들의 밤은 당신들의 낮보다 좆나게 아름답다!”고 외치는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이 지독히 얄팍한 대중음악의 시대에도 여전히 꿈틀대는 롹스피릿의 건재를 전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4월 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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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6 09:22 2010/04/0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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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3D '타이탄', 그래도 볼만하다

영화 2010/04/02 12:11 Posted by 3M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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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3D가 돈이 된다 싶으니까 여기저기서 쓰리디 쓰리디 해대는 판국이다. 기회는 요때다 싶었는지 원래 3D가 아님에도 3D로 급포장한 경우도 있다. 이번주 개봉하는 <타이탄>이 그런 경우다. 홀로 둥둥 떠다니는 자막의 입체감만 불편할 정도로 도드라질 뿐, 딱히 화면 안에서 입체감을 느낄만한 장면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3D라고 안경 나눠주니 이게 뭔가 싶었다.

알고 보니, 2D 소스를 컴퓨터에 집어 넣고 휘리릭 뚝딱 3D로 컨버팅한 영화란다. (진짜 3D는 <아바타>처럼 촬영 당시부터 3D카메라로 찍어야 한다.)'짝퉁' 3D을 만들어 놓고, 3D 상영관에 걸어서 더 비싼 관람료 받아 챙기겠다는 얄팍한 상술이 딱해 보이는 대목이다.

뭐, 그 점만 빼면 영화 <타이탄>은 그 자체로 꽤 즐길만한 구석이 많은 오락영화다. 잘 알려진 그리스 신화의 영웅 페르세우스의 모험을 비교적 충실하게 재연하는 가운데 첨단 CGI에 힙입은 시각적 상상력을 덧입혔는데, 극의 전개나 스펙터클의 긴장감 모두 나무랄 데가 없다. 특히 메두사와의 대결 신이 흥미롭다. 신의 횡포에 맞선 인간의 저항에 무게 중심을 둔 이야기 구조도 나름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적어도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보다 낫다.)

여하튼, 괜히 돈 쓰지 마시고 2D로 관람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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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2 12:11 2010/04/0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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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듦새에 허점이 보여도, 이야기의 밀도가 떨어지고 엉성해도 빠져들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지난 달에 <하모니>가 그랬다면 이번 달엔 <육혈포 강도단>이 내겐 그런 영화다. 그러고 보니 두 영화의 장르는 180도 다르지만 괜시리 닮은 구석이 많다. 핍박받는 모성의 풍경을 전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 무엇보다 두 영화 모두 나문희가 나온다.

<하모니>도 중반 이후 관객을 울리려는 강박적 전개에 눈물과 한숨이 동반 배출됐는데, <육혈포 강도단>도 막상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은행 강도 상황이 본격화하는 중반부터 맥이 빠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미워할 수가 없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 그건 영화의 힘이 아니라 현실의 힘 때문이다. 관객들이 공유하는 현실의 궁핍함이 자동연산적으로, 세 할머니의 눈물 겨운 고군분투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이다.

<육혈포 강도단> 같은 영화를 보고 '저런 상황이 과연 벌어질 수 있겠어?'라며 드라마적 개연성의 문제를 들고 나온다면 한참 모자란 평가 방식일 것이다. 이 영화는 그냥 그렇게라도 세상을 뒤집어 버리고 싶은,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 세계에서 가장 무기력한 이들의 억하심정을 가상의 현실을 통해 드러내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가상을 존재하게 만드는 전제에 수긍하느냐일 것이다.

젊은이들이야 '88만 원 세대'론에 힘입어 관심이라도 얻지, 아파트 경비실에서, 거리의 공영주차장에서, 꼬박 밤을 새우는 중노동에 최저생계비를 겨우 넘기는 임금을 받고도 혹시라도 잘릴까 전전긍긍하는 노년 비정규 노동자들의 척박한 삶은, 사회적 관심사의 범주 안에 좀처럼 포획되지 못한다. 게다가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대물림된 가난으로 인해 자식들로부터의 부양 혜택도 기대할 수 없다는 차가운 현실도.

<육혈포 강도단>에 나오는 세 할머니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앙증맞은 슈퍼마켓 절도 행각에 힘입어, 기껏 하와이 동반 여행을 꿈꾸는 상황이 역설적으로 눈물 겹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며 앞으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됐음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그저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가장 찬란한 순간을 공유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사회는 그 꿈마저 강탈해가는 데 결코 인색하지 않다.

이 영화의 진정성은 할머니들의 일탈적 해프닝을 가정해 그같은 현실을 상기시키려는 데서 찾아진다. 다만 극적 상황에 좀더 설득력을 배가했다면 그 진정성이 고스란히 전달됐을 터인데, 세 할머니(아니 누님들!)를 연기한 나문희, 김수미, 김혜옥의 연기를 못쫓아가는 연출력이 아쉽기만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세 중견 배우의 연기에는 기립박수라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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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1 22:34 2010/03/21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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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에듀케이션' 일탈의 교육적 효과

영화 2010/03/21 22:29 Posted by 3M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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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학교 바깥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때가 있다. 물론 그런 가능성은 아이들을 최대한 오랜 시간 동안 학교 울타리와 학원에 가둬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 시스템에서는 점점 협소해지고 있지만 말이다. 가끔 저러다 큰일 낼 것처럼 삐뚤어진 아이들이 어른이 된 뒤 훨씬 더 잘 나가고 있음을 발견할 때도 있다. 교육은, 이 사회가 '교육'이라고 틀 지어 놓은 제도 바깥에도 존재할 수 있다.

(굳이 번역하면 '어떤 교육' 정도의 제목이 될) 영화 <언 에듀케이션>의 여주인공이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다. 제니는 학교에서 제일 똘똘해 옥스포드 대학 진학을 노리고 있는 17살 소녀지만 학교와 집을 오가는 쳇바퀴 같은 생활이 지겹다. 그녀는 생각한다. 열나게 공부해서 옥스포드에 가고, 그래서 남는 건? 부모님의 희망대로 스펙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 현모양처가 되는 것? 게다가 캠브릿지를 나온 영어 선생님도 지루해 보이긴 마찬가지다. 기껏 저런 미래를 위해 나의 현재를 희생하라고? 제니는 현실이 갑갑하다.

그런 와중에 눈이 번쩍 뜨일 훈남 데이빗이 그녀에게 다가온다. 부동산 사업자인 그는 멋진 차를 가진데다 신나게 산다. 입담도 좋고 유머 감각도 짱이다! 다만 나이가 좀 많다는 것 말고는. 부모님도 대충 눈감아주는 분위기 속에서 제니는 데이빗과 시나브로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학교에서는 그녀의 위험천만한 연애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지만 그녀는 데이빗과의 결혼까지 꿈꾼다. 뭐 어때? 어차피 옥스포드 가도 목표가 결혼이라면 괜찮은 남자가 나타났을 때 미리 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그러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사랑은 기만과 상통한다는 것을, 제니는 뒤늦게 깨닫는다. 물은 이미 엎질러 졌지만, 그녀의 조금 이른 로맨스는 제니로 하여금 막연한 미래를 더욱 구체적으로 붙잡아 매도록 도와준다. 그러니 그녀의 이 비교육적인 일탈은, 종국엔 그 어떤 스승이나 어른들의 훈계를 뛰어 넘는 강력한 교육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이것이 여성 저널리스트 린 바버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언 에듀케이션>은 그다지 설득력 있는 성장 드라마로 여겨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960년대 런던이라는 시공간적 배경과 제니의 가정 환경은, 이 원조교제적 상황도 이해 가능의 영역 안에 품고 간다. 더구나 제니가 학교 바깥에서 경험하는 산 교육은, 입시라는 맹목을 향해 아이들을 몰고가는 학교 교육의 맹점을 슬쩍 드러낸다는 점에서, 우리로서도 곱씹을 여지가 꽤 있다.
 
성숙하게 사랑하는 법, 이것은 도저히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일까.

posted by cinemAgora
2010/03/21 22:29 2010/03/21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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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 세력을 볼 때마다 드는 두 가지 아쉬움이 있다. 첫째. 그들조차 세상을 이편과 저편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에 휘말려 있을 때가 많다는 것. 둘째, 지나치게 근엄하고 경직돼 있다는 것. 물론 한국의 정치사회적 지형을 감안컨대 두가지 측면 모두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진보'라는 개념 안에 세상에 대한 열린 시각과 미래에 대한 낙관이 포함돼 있다고 믿는 나로선, 그들이 은연중에 비치는 어떤 도덕적 우월감과 그로부터 풍겨 나오는 듯한 딱딱함에서 일말의 거부감을 느낄 때가 있다는 것을 고백해야 겠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프랑스 합작의 다큐멘터리 <예스맨 프로젝트>(3월 25일 개봉)는 다른 누구보다 이 땅의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먼저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어차피 시장주의적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그러니까 굳이 분류하면 우파 쪽에 해당하는 분들은, 이 작품을 볼 리 없고 또 봐도 이해하고 싶지 않을 게 뻔하므로, 그래도 성장보다 분배가 더 중요하고, 기업의 이윤보다 시민의 복지가 더 우선시돼야 한다고 믿는 분들한테 얻을 게 참 많은 영화라는 판단 때문이다.

<예스맨 프로젝트>의 앤디와 마이크, 두 다큐멘터리스트는 유희 정신이 저항과 맞닿아 있음을 알고 있다. 반시장주의, 어쩌면 사회주의에 가까운 신념을 가진 듯한 그들은, 그 진보적 신념을 우직하지만 즐겁게 실천한다. 노골적인 조롱을 통해 모순을 까발리기, 그 과정을 낄낄대며 즐긴다.

이것은 <화씨 911>이나 <식코> 등을 통해 보여준 마이클 무어의 방법론(다큐멘터리 이론가 빌 니콜스는 이런 방식을 수행적 다큐멘터리로 분류한다)과 대동소이하되 또 다르다. 이라크 전쟁의 이면이나 의료 제도와 같은 정치적 모순에 초점을 맞춘 무어가, 의원들로부터 그들의 아들을 이라크로 보내자는 서명을 받거나, 관타나모 수용소에 다가가 911 테러 피해자들의 무상 치료를 요구하는 등의 '생떼 쓰기'를 수행적 전략으로 삼는다면, 이들은 작은 거짓말로 큰 거짓말을 까발리는 수행 전략을 택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20여년전 수천 명의 생명을 앗아간 인도의 보팔 참사 책임을 회피하는 다우 케미컬의 비양심을 응징하기 위해 이들은 다우의 대변인을 사칭한다. 그리고 뻔뻔스럽게도 BBC 뉴스의 생중계를 통해 "모든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 보상에 나서겠다"는 거짓 성명을 발표하는 식이다.

물론 그들의 거짓말은 금세 탄로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거짓말을 모의하는 과정만큼 거짓말이 탄로났을 때 벌어진 세상의 반응까지 흔쾌히 즐긴다. 중요한 것은, 이 사기극으로 인해 보팔 참사의 희생자들이 무관심에 의해 방치되고 있다는, 그 잊혀진 진실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설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혹자는 이런 방식을 '선동'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큐멘터리가 객관적 기록으로서의 기능 뿐만 아니라 정치적 선동의 효과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건, 이미 레니 르펜슈탈이 연출한 저 고전적 나치 선전 영화 <의지의 승리>에서부터 입증됐다.

그렇다면 문제는 다큐멘터리스트의 성찰이며 시대정신이다. 그리고 다큐멘터리가 자신의 성찰을 밀어 붙여 관람자를 각성시키고 설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면, 기왕이면 이처럼 유쾌하고도 발랄한 방식으로 풀어가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첨예한 모순이라는 점에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한국에서 이런 유쾌한 사회파 다큐멘터리를 만나기 쉽지 않다는 건 유감이다.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룬 다큐멘터리들은 여전히 너무 진지하고 지나치게 심각하다. 그리하여 담론을 확산시키는 대신 진보를 자처하는 그룹 안에서만 소비되는 자위의 수단으로 그치기 일쑤다. 우리의 진보주의자들은 지레 겁을 먹고 있거나 선구자적 책임감에 짓눌려 있거나 둘 중의 하나라서 그런걸까.  

때론 농담 한마디가 큰 울림을 준다. 영화 말미에 앤디와 마이크가 주고 받는 농담. "우리가 진짜 세상을 바꾼 걸까?" "바보야, 영화 상영 시간이 고작 한 시간 반인데 그 사이에 어떻게 세상을 바꾸냐?" 물론 그들은 앞서 "사회 단체에 가입하십시오. 한줌도 안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지 못할 리 있겠습니까?"라는 뼈 있는 선동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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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7 09:28 2010/03/1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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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애' 어설픈 치정극

영화 2010/03/16 10:47 Posted by 3M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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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늘 기막히거나 희귀한 종류의 사랑을 찾는다. 당사자들을 지독한 불행의 나락 속에 빠뜨리는 그런 사랑을 말하기 좋아한다. 불륜은, 그 기막히거나 희귀하고 또한 불행한 사랑의 단골 메뉴가 돼 온 지 오래다. 이젠 그냥 불륜도 뭔가 밋밋해서, 최근의 한국영화들은 이를테면 불륜을 취미 생활의 경지에 올려 놓은 유부녀들의 이야기 <바람 피기 좋은 날>이나 노골적인 스와핑 멜로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혹은 당당히 1처 2부제를 선언하고 나선 <아내가 결혼했다>처럼 더욱 자극적인 불륜을 찾는 데 게으르지 않은 것 같다.

이번에는 형의 아내, 즉 형수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야 일찍이 이병헌과 이미연이 주연했던 <중독>에서도 다뤄진 바 있지만 이번에는 형제가 '쌍둥이'라는 게 중요한 차별점이다. 너무 닮아서 마누라조차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의 쌍둥이가 엇갈린 운명으로 인해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대립하게 된다는 얘기다.  형이 식물인간이 된 사이에 쌍둥이 동생이 찾아왔고, 외로움에 말라 비틀어지기 일보 직전의 형수가 그 쌍둥이 동생과 위험한 사랑에 빠져든다는 게 기둥줄거리다.

흥미로운 설정인가? 잘 모르겠지만 일단 흥미롭다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사랑이라는 감정의 정체에 대해 곱씹을만한 구석이 없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게 된 쌍둥이 형제의 갈등이 아니라 쌍둥이 형제를 동시에(정확하게는 차례대로) 사랑하게 된 여자 주인공의 시점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 본다면 더욱 그럴지도.

좀더 구체적으로, 이 영화 속의 여주인공처럼 산행길에 위기에 처한 자신을 구한 두 형제 중 한 명이 그녀를 들쳐 업고 내려갔으며 그 와중에 그에게서 비누 냄새가 풍겼다는 기억, 그러니까 그 감각적 기억은 사랑을 이루는 아주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언가에 의해 그 기억이 조작되거나 왜곡됐을 때, 여주인공은 눈앞의 대상 앞에서 같은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만다. 그녀는 과거의 감각과 현존하는 감각 사이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영화는 '사랑은 결국 감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찰나의 감각적 짜릿함이 스파크를 만들어내기 마련이고, 적어도 에로스적 사랑의 범주에선 직접 만져질 수 있는 감각만이 진실이라는 것? 그리고 그 감각은 영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쉽게 길을 잃게 만든다는 것?

일리도 있고 제법 흥미도 넘치는 얘기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영화가 이야기의 강력한 힘으로 관객들을 끌고 가지 못한다면, 그 일리 있고 흥미로운 얘기도 관객들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기 어렵다. 유감스럽게도 <비밀애>가 그렇다. 오로지 여주인공의 감각의 향방에 집중하느라 그랬는지 정사의 순간들은 나른하고 감정의 향방은 오리무중이다. 세 사람 간의 감각의 게임은 이윽고 뜬금없는 권선징악적 진실 게임으로 치달으며 스스로 어설픈 치정극임을 고백한다. 유지태의 스테레오타입화된 연기나 윤진서의 혀짧은 발성 못지 않게 장면과 미스매칭된 음악도 거슬린다.

3월 25일 개봉.
 
덧붙임) 혹 궁금해하실 분이 계실 것 같아 말하자면, 성적 표현 수위는 <쌍화점>이나 <미인도>의 70% 정도 수준이다. 개인적으로 유지태와 윤진서, 두 배우의 에로틱 조합은 그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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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6 10:47 2010/03/1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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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아일랜드' 트라우마의 감옥

영화 2010/03/16 10:44 Posted by 3M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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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가진 영화의 필연적 숙명은 원작과 비교되는 것이다. 현실에선 원작까지 읽는 관객들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원작이 훌륭하다면 비교의 주체들은 깐깐해진다. 영화의 입장에선 경향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아진다. 평자들은 대체로 원작 소설을 읽으며 떠올렸던 자신의 상상을 우위에 놓기 좋아하고, 대체로 영화가 직설적으로 재연하는 '그림'이 상상에 미치지 못하거나, 상상에서 너무 멀리 나가 버렸다고 믿기 좋아하기 때문이다.
 
2003년 출간된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 '살인자들의 섬'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마틴 스콜세지의 신작 <셔터 아일랜드>도 아마도 그같은 운명에서 자유로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가 훌륭한 원작을 비교적 충실하게 옮긴데다, 각색 과정에서 보여준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적 개입이 대단히 능수능란한 것이었다고 믿고 싶어졌다. 내 경우,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었는데, 이를테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경우 영화를 먼저 본 게 원작 읽는 재미를 반감시켰던 것과는 달리, 영화를 먼저 본 게 소설의 문제적 주인공 테디를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소설 '살인자들의 섬'과 영화 <셔터 아일랜드>는, 한마디로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거대한 감옥'으로 독자와 관객들을 안내하는 작품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모호하다고 하실 수 있겠으나,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표현함으로써 사전에 쓸데 없이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피함과 동시에 일말의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또 어쩌면, 희망컨대, 이 영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초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야기는 연방 보안관 테디와 그의 파트너 척이 셔터 아일랜드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중범죄자만을 수용한 이 곳에서 한 여죄수(환자)가 사라져 버린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서다. 테디는 여죄수가 남긴 의문의 쪽지를 단서로 여죄수의 행방을 쫓는 가운데, 이 섬에서 뭔가 흉악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가운데, 그 자신의 개인사적인 불행(또는 트라우마)이 연루되며 셔터 아일랜드는 빠져나갈 수 없는 거대한 감옥이 돼 그를 옥죈다.

마틴 스콜세지가 '살인자들의 섬'을 영화화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마틴 스콜세지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고 있는 어떤 주제 의식과 정확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택시드라이버>(1976)에서부터 최근작 <갱스 오브 뉴욕>(2002)과 <애비에이터>(2004)까지, 그는 미국의 역사성을 정신분열증적 폭력성으로부터 찾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

<셔터 아일랜드>도 마찬가지다. 여죄수 실종 사건을 계기로 셔터 아일랜드라는 밀폐 공간의 미스터리와 한 인물의 내면에 얽혀든 복잡한 상황을 풀어가는 듯 보이지만, 1950년대의 미국 사회, 즉 2차 대전이 남긴 후유증과 공산주의에 대한 광신적 공포가 휘몰아치던 시대적 분위기는 원작과 영화에서 공히 아주 중요한 배경 단서가 된다.

이쯤에서 소설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이 무의미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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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폭력을 사랑하신다네. 자네도 알지?"
"아뇨 모릅니다."
교도소장은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가 테디를 향해 돌아섰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에 폭력이 왜 이리 많겠나? 폭력은 우리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지. 우리는 숨쉬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게 폭력을 휘둘러. 전쟁을 하고, 희생 제물을 불태우고, 형제들을 약탈하고 그들의 몸을 공격하지. 그리고 너른 벌판을 냄새나는 시체들로 가득 채워, 왜일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으로부터 우리가 교훈을 얻었다는 것을 하나님께 보여드리기 위해서일세."

이 지독히 냉소적인데다 신성모독적인 교도소장의 대사는, 영화엔 빠져 있다. 마틴 스콜세지는 대신 원작의 닫힌 듯한 결말을 살짝 바꾸고 테디의 다음과 같은 대사 하나를 첨가함으로써 그만의 인장을 새긴다.

"자네라면 어떤 삶을 선택하겠는가? 괴물로 오래 사는 것과 선량하게 빨리 죽는 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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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6 10:44 2010/03/1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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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터앤미디어의 생각

    Tracked from tattermedia's me2DAY  삭제

    <'셔터 아일랜드' 트라우마의 감옥> 마틴 스콜세지는 대신 원작의 닫힌 듯한 결말을 살짝 바꾸고 테디의 다음과 같은 대사 하나를 첨가함으로써 그만의 인장을 새긴다. “자네라면 어떤 삶을 선택하겠는가? 괴물로 오래 사는 것과 선량하게 빨리 죽는 것 중에서.”

    2010/03/16 11:59
  2. [영화,스릴러]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2010)

    Tracked from 월풍도원(月風道院) - Delight on the Simple Life.  삭제

    이미지출처 : www.clemface.com '일단 초반에 배를 타고 들어가는게 멋지군.' 영화 셔터 아일랜드는 승객이 두명뿐인 썰렁한 배에서 시작됩니다. 동료 척과 정신병에 걸린 죄수들을 수용하는 감옥의 사건을 수사하러 가는것이죠. 여러가지 의문을 가지고 수사를 진행해 가는데.. 셔터 아일랜드의 장르는 멜로에서 스릴러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드라마 입니다. 사랑에 미쳐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가. 연애, 애정물에서 스릴러혹은 공포물로 바뀌어 버리는..

    2010/08/26 10:20
모든 사랑은 다 등가라고 하지만,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만큼은 표면적으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마치 사랑이 찬란한 청춘의 전유물이라도 된 듯 대다수의 영화나 드라마가 20-30대의 달뜬 설렘과 아픈 이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은가. 세상이 개화된 덕에 기혼자들의 로맨스를 다루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지만 그나마 여전히 파릇한 성적 매력을 갖추고 있을 때야 가능한 얘기다.

노인들의 성과 사랑을 다룬 페이크 다큐 <죽어도 좋아>나 김해숙이 딸의 애인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 <경축! 우리사랑> 같은 영화가 '파격'이라는 수사와 함께 어느 정도의 대접은 받을지언정 광범위한 흥행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걸 보면, 여전히 공식적으로 장년층의 사랑은 '늘그막에 주책'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배가 나오고 옆구리살이 늘어지고 얼굴에 검버섯이 피어날 나이엔 사랑도 섹스도 물 건너 가는 게 당연한 노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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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소개한다는 게 서론이 길었다. 제목부터 통찰적인 <사랑은 너무 복잡해>(It's Complicated). 할리우드에서 가장 여성적인, 그래서 어쩌면 가장 현실성 넘치는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온 낸시 마이어스의 신작이다. 주인공은 메릴 스트립. 실제 나이로는 환갑이 넘었고, 극중 이혼한 전남편으로 나오는 알렉 볼드윈이 52살이니까 극중 나이가 대략 50대 중반 정도로 해두자.  

젊고 섹시한 여성과 바람난 남편과 이혼한 지 10년. 제인은 베이커리를 운영하며 남부럽지 않은 '돌싱'으로 살고 있지만 옆구리를 파고드는 외로움만큼은 어쩌지 못하던 와중에 '사고'가 일어난다. 하룻밤의 실수로 인해 전남편 제이크(알렉 볼드윈)와 불꽃튀는 사랑에 빠져든 것. 운명의 장난도 유분수지, 하필 버젓이 아내가 있는 전남편과 불륜에 빠져버렸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이런 와중에 준수한 건축가 이혼남 아담(스티브 마틴)이 매너좋고도 사뿐하게 들이대주니 늦바람난 양다리 삼각관계에 날 새는 줄 모른다. 마냥 행복한 비명이라도 지를 상황이라고? 빠져들 때야 좋지만, 사랑이란 게 막상 해보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제목 그대로 모든 사랑은 복잡하다. 통제되지 못한 욕망과 이성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 질투심이 끼어들고, 그로 인해 예기치 못한 상처를 내거나 받는다. 망할 놈의 외로움이 싫어 시작한 사랑이지만 머리가 깨질만큼 복잡한 사랑의 미로에 빠져 버리면 차라리 외로움이 그립다.

사랑이라면 이골이 났을 제인은 그걸 몰랐을까? 왜 몰랐겠나. 하지만 사랑 앞에선 경험과 나이가 통하지 않는다. 사랑을 한 번 하든 백 번 하든, 10대든 50대든, 사랑 앞에선 누구나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다. 모두가 철부지다. 그래서 또 달뜨고, 또 서툴고, 또 상처받기 마련이다.

<사랑은 너무 복잡해>는, 그렇게 뒤늦게 찾아든 기막한 삼각 관계를 통해  어느 누구도 프로일 수 없는 사랑의 보편적 풍경을 설득력 넘치게 제시한다. 주인공들이 산전수전 다 겪었을 법한 50대 장년층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제인과 제이크의 늦바람이 절로 미소가 감돌 정도로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한편으로는 결혼과 사랑의 현실적 함수관계에 대해서도 곱씹을만한 여운을 남긴다.

<사랑은 너무 복잡해>의 광고를 보니 주로 여성 관객들을 홍보의 메인 타깃으로 삼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건 여성 관객들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결코 아니다. 이런 로맨틱 코미디라면 남자들도 배울 게 많다. 3월 11일 개봉. 기혼 커플이나 이혼자, 실연 유경험자에게 강추.

posted by cinemAgora
2010/03/08 19:50 2010/03/0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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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의 최고 흥행 기록에 부쳐

영화 2010/03/04 09:52 Posted by 3M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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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박스오피스(2010.2.26~28)

순위    작품명                      스크린수          주말 관객     누계 관객     개봉일
==================================================
1        의형제                         520                 458,430      4,265,751      02/04
2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    333                 211,261      1,629,578      02/11
3        평행이론                      309                 178,554        621,336      02/18
4        하모니                         331                 149,735      2,738,683      01/28
5        아바타                         209                 129,433    13,081,618      12/17
6        러블리 본즈                  275                 100,954        120,299      02/25
7        포스 카인드                  225                   85,031       101,597       02/25
8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232                 71,990       582,562       02/11
9        클로이                         217                   56,369         70,221      02/25
10      엘라의 모험 2                 93                   22,390         26,524      02/25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박스오피스

마전 만난 서울영상위원회의 황기성 위원장이 대화 도중 이런 얘기를 꺼냈다. “최근의 할리우드 영화는 영화라는 틀을 썼을 뿐이지, 사실상 거대한 구경거리일 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의 본령은 아닙니다.” 호기롭게 들리는 그의 말을 듣자 하니, 한편으로는 그게 두려움의 역설적 표현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구경거리로 몰려가는 수백 만 명의 관객들을 목도하며, 이 시대의 영화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고민에 휩싸이는 건 비단 그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난 여름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이 한국에서 개봉한 외화 사상 최고 흥행 기록인 740만 명의 관객을 싹쓸이한 데 이어 인류 멸망의 스펙터클을 현란한 CGI로 전시(그렇다! 그건 말 그대로 전시다!)<2012>가 뒤 이어 4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포획했다. 이런 일련의 상황 앞에서 한국영화 산업 안팎에 일종의 가위 눌림 증세가 나타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정점은 <아바타>였다. 첨단 3D 기술과 이른바 이모션 퍼포먼스 캡쳐가 선보이는 경이로운 시각 효과에 관객들뿐 아니라 영화 산업 관계자들도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는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줄곧 한국영화만의 전유물이었던 천만 관객 타이틀을 가뿐하게 넘어선 데 이어 지난 주말에는 마침내 <괴물>이 보유한 국내 최고 흥행 기록(1,300만 명)까지 경신했다.

언론들은 이 영화를 계기로 3D가 미래 영화의 대세가 될
것인지 전망하느라 분주해졌다. 나도 여러 인터뷰에 불려나가 영화의 미래학자 행세를 해야 했다. 빠지지 않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한국영화가 과연 이 대세에 합류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것.

당신이 미국인이 아니라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올해 몇 편의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부분적으로 3D를 시도할 예정이긴 하지만, 가까운 시일 안에 한국영화가 <아바타> 수준의 시각 효과를 구현한다는 것은, 한국 속담을 빌어 말하자면,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는 일에 가깝다고 보는 게 타당하기 때문이다.


<
아바타>는 영화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할리우드 바깥의 영화인들에게 또 하나의 거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영화를 거대한 구경거리로 모드 변환시키며, 관객들마저 순식간에 그 흐름에 동참시키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할리우드의 힘이고, 또 그 힘이 각국의 자국영화들을 위축시킬 것이 분명해 보인다면, 과연 어떤 방어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가, 하는 것.

한편에서는 과감한 투자를 통해 할리우드에 버금가는 시각효과 노하우를 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야기 장르 특유의 영화적 특수성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며, 각 지역의 고유성과 보편성을 함께 담아낸 강력한 내러티브의 개발만이 살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편, 구경거리가 아닌 삶에 대한 통찰을 담아낸 이야기가 여전히 영화의 본령이라 할지라도, 관객들을 감동시키는 참신하고도 멋진 이야기라는 게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데 또 고민거리가 있다. 할리우드를 비롯한 전세계적인 공통 현상이겠지만, 독창성 넘치는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흘러나온 지 오래다.
 
그나마 일본 같은 나라는 대체로 문학이나 만화 등이 이야기의 원천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장르 문학이나 출판 만화의 저변이 탄탄하지 않다는 고질적 약점을 안고 있다. 그렇다면 여전히 기댈 곳은 젊은 감독들의 창의력 뿐일까? 어쨌든 그 어느 때보다 최근의 한국영화계는 독창성 있는 원천 스토리와 강력한 내러티브를 개발해 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영화는 갈수록 구경거리가 되어가고, 이야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마디로 점점 사면초가다. 그러나 여기서 <아바타>로 돌아가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엄청난 물량이 빚어낸 시각효과의 규모가 전해주는 착시 현상을 걷어내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는 구경거리로서의 영화와 이야기 장르로서의 영화가 최적의 시너지를 만들어낸 모범 사례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적 근대화 모델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훌륭한 모험극의 형식으로 담아낸 <아바타>는 이야기의 설계라는 측면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어쩌면 차이는 규모일 뿐이며, 그것이 영화의 흥행을 보장하는 전가의 보도는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릇을 위해 음식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면 음식이 맛있고, 그 음식에 걸맞는 아름다운 그릇이라면, 화답할 관객이 분명히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해 <아바타>는 역설적인 방증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연말, 동양적 도술의 세계를 재기발랄한 판타지 액션 영화로 버무려 꽤 좋은 반응을 얻은 <전우치>와 '분단'이라는 한국적 특수성을 휴먼 액션 드라마의 틀에 담아내 또 한번 4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의형제> 같은 영화가 가장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일 것이다.

굳이 한국영화 말고도, 이를테면 <디스트릭트 9>이나 <더 문>과 같은 SF 영화들로부터 배울 점이 아주 많다. 여전히 돈과 물량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관건은 매력적인 이야기와 그 이야기와 조응하는 최적의 구경거리 전략을 함께 고민하는 것일 터이다
.

어쨌든 할리우드의 새로운 변화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한국 영화인들에겐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10년 한국영화가 어떻게 응전할지 주목된다.

posted by cinemAgora

2010/03/04 09:52 2010/03/0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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