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해진과 김혜수는 끝까지 열애설을 부인했어야 한다. 아니 최소한 침묵으로 일관했어야 한다. 보도 자료를 통해 열애 사실을 공식 인정함에 따라 그들은 과거의 해명이 거짓말임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됐을 뿐만아니라, 향후 동료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심각하게 침해될 소지를 만들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유해진과 김혜수의 열애설이 보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8년 11월 한 스포츠신문에서 유해진과 김혜수의 결혼설을 특종 보도했다. 그렇지만 이 특종 보도는 곧 오보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기사의 핵심은 2009년 5월 결혼설이었는데 두 사람은 지난 해 5월에 결혼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결혼설 뿐 아니라 열애설 자체도 부인했다. 해당 기사를 작성했던 선배 기자는 필자에게 “한 군데서만 확인한 사안을 가지고 특종이라고 보도하진 않는다”라며 “여러 곳에서 크로스 체크를 해서 열애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결혼설 정황까지 잡혀 기사화한 것인데 당사자들이 아니라니 황당할 뿐”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선배는 연예계를 떠났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이번 기사로 당시의 황당함이 좀 누그러졌는지 궁금하다.


열애설 기사는 연예 언론에서 가장 큰 뉴스 가운데 하나로 분류된다. 그만큼 독자들의 관심이 큰 영역이지만 취재 방법이 상당히 애매한 것도 사실이다. 지인 및 측근들의 제보, 데이트 목격자의 증언 등을 종합해 열애설 기사가 보도되는데, 열애설 기사의 속성상 당사자들이 아니라고 하면 이는 곧 오보가 되고 만다. '유해진 김혜수 열애설' 최초 보도가 오보가 됐던 게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열애가 지속돼, 나중에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도 있지만 연애의 특성상 해당 커플이 열애 사실을 부인하다 결국 결별하게 되면 그 기사는 영원히 오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연예인 열애설 기사에서 실제 열애 중인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연예인 입장에서는 열애설 공개에 따른 실익을 따져, 인정과 부인을 결정한다. 실제로 연예부 기자들 사이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과거 사례 가운데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사연도 있다. 90년대 한 언론사에서 연예인 커플의 결혼설을 보도하자 해당 연예인들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며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물적 증거가 없는 해당 기자는 패소했고 수천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두 연예인은 결혼했다. 그러면서 해당 연예인들이 했던 말, “해당 결혼설에 대응하며 소송까지 진행하는 과정에서 애정이 싹터 결혼하게 됐다.” 아! 이를 어쩌란 말인가.

이번 열애설 기사에서 잇따라 특종을 보도한 건  <스포츠서울닷컴>이지만, 한국 언론에서 밀착취재를 주도해온 세력은 사실 여성 월간지였다. 그리고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일요신문> 역시 신문과 잡지의 성격을 두루 갖추고 있어 오랜 기간 밀착취재 기법으로 연예인들을 취재해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성 월간지들이 특종 경쟁을 중단하면서 월간지의 밀착취재 역시 잠잠해졌다. 그러는 사이 <스포츠서울닷컴>이 밀착취재에 올인해, 대표적인 밀착취재 언론사로 자리잡게 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포츠서울닷컴>은 지난 2~3년 새 다양한 연예인의 열애설을 보도했고 그 때마다 데이트 현장을 촬영한 사진이 함께 보도됐다. 측근이나 지인의 제보, 데이트 목격자의 증언 등에 머물러 있던 연예인 열애설 기사의 증거에 데이트 현장 사진이 추가된 것이다. 이런 취재 기법을 소위 ‘증거주의 보도’라 부른다.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기사화 하지 않는 영미권 언론사들이 채택하고 있는 취재 방식이다. 이로 인해 해외에는 언론사에 ‘증거’를 제공하는 파파라치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 아직까지 한국 언론은 증거주의 보도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보와 증언만으로 보도된 열애설에 대해 해당 연예인이 이를 인정할 지 아니면 부인할 지를 고민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영미권을 비롯한 해외에선 이런 형태의 증거가 없는 열애설 보도는 존재할 수 없다. 이는 다만 연예부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정치부나 사회부 경제부 등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소식통에 의하면’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으로 불투명한 증거를 기반으로 한 보도를 자주한다. 그러다 보니 확인도 안 된 검찰 수사 내용을 언론에 흘리는 ‘빨대’들이 존재한다. 지난 한 해 검찰 ‘빨대’들이 언론과 여론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두들 기억할 것이다. 물론 해외 언론에서도 ‘소식통에 의하면’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에 따르면’ 등의 표현이 종종 등장하나 이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아직 국내에선 익숙하지 않은 증거주의 보도를 채택한 탓인지 밀착취재 방식은 늘 사생활 논란을 야기하곤 한다. 그런데, 과연 어디까지가 사생활 침해일까. 열애설을 보도하는 것 자체가 사생활 침해일까, 아니면 밀착취재를 통해 열애 장면 사진을 촬영해 보도하는 것이 사생활 침해일까.


유해진과 김혜수는 스스로 밀착 취재를 유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의 열애설 인정 보도 자료가 각 언론사로 발송된 이후 연예부 기자들은 상당한 배신감과 위기감을 가졌다. 당일 오후 만난 몇몇 후배 기자들은 최초로 열애설이 보도됐던 당시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소속사를 통해 열애설을 강력 부인한 두 사람은 이후 영화 홍보를 위해 가진 매스컴과의 인터뷰에서도 거듭 열애설을 부인했다. 심지어 양측 모두 “아무렴 내가 김혜수와 만나겠냐?” 또 “아무렴 내가 유해진과 만나겠냐?”는 반응까지 보였을 정도였다. 그런데 결국 데이트 현장이 촬영된 사진이 공개되며 다시 한 번 열애설 기사가 보도되자 이번엔 열애 사실을 인정했다. 다음은 김혜수의 소속사에서 발송한 보도 자료의 일부.

이번 모 스포츠 신문의 사진과 기사들이 배우나 연예인으로서가 아닌 극히 사적인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들의 사전 확인이나 동의 없이 보도되고, 그로 인해 파생 되는 무분별한 추측성 보도가 이루어진 상황에 대해서는 유감스러움과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 역시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연예인들이 국민들의 관심과 그에 따른 궁금증에 부응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최소한의 프라이버시 역시 보호되어야 한다는 점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맞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만약 그들이 2008년 11월에 보도된 열애설을 떳떳하게 인정했다면 이렇게 언론이 밀착 취재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을까? 만약 이번 보도가 사진없이 다시 증언과 제보 등으로만 구성된 기사였다면 과연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했을까?

결국 이번 유해진과 김혜수의 열애설 공식 인정은 매스컴에게 “앞으로 열애설을 보도하려면 밀착취재를 해서 데이트 현장 사진이라도 한 장 가져와봐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 실제로 <스포츠서울닷컴>이 밀착취재를 통해 연거푸 열애설 보도에 성공하자, 몇몇 언론사에서 비슷한 팀을 구성하려 했다는 소문이 들려오곤 한다. 실제로 팀을 구성했지만 잘 안됐다는 얘기도 있고, 비슷한 팀을 꾸리려다 중간에 계획을 접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번 보도로 인해, 다시 연예 언론이 뒤숭숭해지고 있다. 유해진과 김혜수 커플이 내린 특명(?)에 따라 밀착취재 형태로 연예인의 열애설을 취재하려는 언론사가 급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모든 기자가 연예인들의 특명(?)에 따라 두꺼운 외투와 무릎담요 등을 챙겨, 열애설이 나도는 스타의 집 주변에 잠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유해진과 김혜수가 이번 열애설 보도에 대해,
차라리 앞서 언급한 전설속 90년대 선배 연예인처럼 “2008년 열애설 보도 당시엔 남남이었는데 그 보도에 대항하려고 의논하다가 사랑이 싹텄어요”라는 거짓말이라도 하는 편이 그나마 나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 이 가사에 첨부된 사진은 <스포츠서울닷컴> 사진팀의 허락하에 게재된 것이므로, 무단 전제,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아룰러, 사진을 제공해준 스포츠서울닷컴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posted by leady

2010/01/05 18:49 2010/01/05 18:49

TRACKBACK :: http://enterfactory.net/trackback/207

  1. 태터앤미디어의

    Tracked from tattermedia's me2DAY  삭제

    유해진과 김혜수, 동료 연예인과 연예 언론을 곤경에 빠뜨렸다. 끝까지 열애설을 부인하거나 침묵했어야 한다. 열애를 공식 인정함에 따라 그들은 과거의 해명이 거짓말임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됐을 뿐 아니라, 향후 동료 연예인의 사생활이 심각하게 침해될 소지를 만들었다.

    2010/01/06 16:17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장의 폭력 사건을 계기로 다양한 소문이 떠도는 중이다. 항간의 소문처럼 조폭이 개입했는 지, 아닌 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주목해야 할 점은 사건이 벌어지자마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조폭과 관련된 소문이 떠돈다는 점이다. 왜 연예인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약방의 감초처럼 조폭과 관련된 루머가 떠돌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예인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반인들 보다 조폭 혹은 조폭과 비슷한(?) 부류와 얽히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과거에는 조폭이나 조폭과 연관된 이들이 직접 영화 제작사나 배급사, 연예 기획사를 운영하는 사례가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나이트 클럽과 같은 향락 산업의 흥행 여부가 유명 연예인의 출연에 좌지우지되는지라, '조폭'으로 불리는 부류의 개입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조폭의 입장에서 연예인은 '돈줄'이다보니,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

다들 알다시피, 연예인은 얼굴과 몸, 이미지가 전재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들이다. 일반인들의 경우, 치명적인 부상이나, 큰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삶의 질이 급격히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연예인은 얼굴의 작은 상처 하나로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고, 진위가 왜곡된 뜻하지 않은 구설수만으로도 모든 걸 잃게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실제로 연예계에는 '테러'로 볼 수도 있는 사건, 사고가 유독 많다. 이권을 둘러싼 뒷골목 싸움의 불똥이 연예인에게로 튀는 경우도 있고, 불순한(?) 의도로 연예인을 '타겟'으로 삼는 이들도 더러 있다.

실제로 몇 년 전, 조폭들이 지방 호텔에서 카운터를 위협해 톱여배우의 호텔방 키를 강탈한 뒤, 한밤중에 자물쇠를 열고 침입을 시도한 경우도 있었다. 걸쇠가 걸려있지 않았다면, 코디네이터와 함께 있지 않았다면, 큰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 예전에는 이권을 노린 계획적 '테러'가 많았고, 요즘에는 우발적 '테러'가 많다고 한다. 따라서, 여자 연예인들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장소에서의 숙박을 꺼리는 경향이 있고, 불가피한 경우, 경호원을 대동하거나 코디네이터 등과 한 방을 쓰는 등의 조치를 통해, 불미스러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

채권과 관련된 억울한 경우도 발생한다. 돈을 빌려 줬다가 떼이는 경우인데, 연예인들이 오락 프로그램에서 농담처럼 빌려 준 돈, 혹은 투자금을 돌려 받지 못했다는 하소연을 늘어 놓는 경우가 있다. 이는 연예인이 일반인 보다 채권을 행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자주 발생하는 일이다. 채무가 아니라 제 돈 돌려받는 채권 행사가 어렵다고?

연예인은 이미지가 생명이다. 따라서, 이를 노리고 정당한 채권 행사를 거부하는 채무자들이 더러 있다. 자칫 잘못하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려는 악덕 연예인으로 내몰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따라서, 정당한 채권 행사 조차 쉽게 하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따라서, 상식과 법률 대신 비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연예인도 간혹 있다. 조폭 혹은 조폭과 다를 바 없는 대리인을 내세워 채권을 행사하는 사례가 그에 해당한다.

얼굴과 몸이 재산이고 이미지가 생명인 연예인들의 세계는 일반적인 상식과 법률로는 이해하기 힘든 사례들이 수시로 발생한다. 배우 감우성처럼 수 년간 협박에 시달려 정당한 채권 행사를 하지 못하다가, 결국, 법의 힘으로 간신히 해결을 하는 경우는 보기 드문 사례이다. 꽤 많은 연예인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정당한 권리 행사를 포기하거나, 자의 반 타의반으로 법이 아닌 다른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보니, 유독 연예계에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조폭'과 관련된 소문이 많이 떠돈다. 시쳇말로 진위 여부는 '며느리'도 모른다. 소문만 무성할 뿐, 실체를 알기 어렵다. 다만, 파렴치한 가해자 보다는 억울한 피해자가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될 뿐.

posted by PD the ripper         
         
2009/12/17 09:04 2009/12/17 09:04
TAG

TRACKBACK :: http://enterfactory.net/trackback/196

  1. 태터앤미디어의

    Tracked from tattermedia's me2DAY  삭제

    연예인과 조폭의 비밀스러운 관계는 사실일까?

    2009/12/17 15:27

뵨사마 수난극 관람기

연예 2009/12/11 09:10 Posted by 3M흥업
사용자 삽입 이미지
3M흥업의 객원 필자이기도 한 일요신문의 신민섭 기자가 또 바빠지게 생겼다. 그는 연예 기자 가운데서도, 특히나 '사건 사고' 쪽에 집중하는, 그러니까 연예계의 사회부 기자 쯤 되는데, 요 몇 년 새 진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만드는 일이 연타석으로 터지고 있으니 이게 당쵀 축하할 일인지 위로할 일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요즘 연예기자는 유망직종이다. 연예인들이 좀 사고를 쳐줘야 말이지.(모처럼 눈빛을 반짝이며 취재 삼매경에 빠져 있을 그를 대신해, 요즘 영화 바깥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추구하는 cinemAgora, 어쭙잖게 연예 분야에까지 슬쩍 수저를 올려본다.)

이번엔 뵨사마가 도마 위에 올랐다. 연예인도 사생활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한쪽에서 흘러나온 얘기를 일방적으로 실은 언론에 그의 변호인단이 쌍심지를 켰다고 하는데, 어쩌랴. 사람들이 그의 사생활을 이리도 궁금해하는데 말이다. 이게 바로 유명세의 대가 아니겠는가. 혹은 이른바 공인의 비운 또는 숙명이기도 하고.

사실, 나는 연예인을 공인이라고 부르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일희일비하는 게 썩 마뜩지 않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이긴 하지만, 연예인이 대중 사이에서 속세의 욕망이 투영된 아이콘, 또는 아바타로 기능하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연예인들은 인간처럼 질투하고 폭력적이고 변덕스러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현대판 버전 쯤일지도 모르겠다. 현대 사회가 개인화, 파편화되는 가운데 이웃 공동체가 사실상 사라지다 보니, 브라운관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이웃보다 더 친숙한 이웃으로 여기게 되는 심리도 작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연예인 간통 사건에 아랫집 일인양 혀를 차거나 목소리를 높이고, 유명 연예인을 보면 마치 오래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스스럼 없이 친절하게 대하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닌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각종 TV 연예정보프로그램들이 "안타깝습니다" 라는 가식 멘트를 날리면서도 시청자의 호기심에 적극 화답하며 어느때보다 '흥미진진'하게 전할 게 빤한 뵨사마 수난극의 향방은, 또 일견 빤하다. 하필 혼인빙자간음죄도 위헌 판결난 마당에 그에게 속았다며 법에 호소한 스물 두살 리듬체조 전공 여인의 넋두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시기상조라 할지라도, 이미 여론전에서는 뵨사마가 밀리는 형국임은 어쩔 도리가 없다는 얘기다.

대체로 이런 상황에선 대체로 남자들이 백전백패다. 설령 나중에 그의 결백이 사실이고 리듬체조 여인이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특히 여성들은 주변적 정황을 통해 직관적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주변적 정황이란, 대체로 돈 좀 있고 권력 좀 가진 남자들이 여자 등골 빼 먹는 데 선수이며 널린 게 여자이므로 좀 데리고 놀다 싫증나면 갈아 타는데 익숙하다는, 유사 이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권력과 남녀 관계의, 일종의 법칙화된 경향성이다.

직관적 판단이란, 그러므로 대충 이런 사연이라면 보나마나 이랬을 것이라고 넘겨 짚는 걸 말하는데, 그게 또 확률적으로도 대략 맞는 경우가 많으며, 나 말고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게 심리적 버팀목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검찰이 수사에 나서도 결론이 나려면 하세월일 터이고, 이래저래 이 사건과 관련해 계속 말들이 오고가거나 문제의 여인이 언론에 직접 나서기라도 하는 날에는, 뵨사마만 골병 들게 생겼다. 뭐 어쨌든 분명해 보이는 것은, 그가 이번엔 헤어나기 힘든, 꽤 깊은 함정에 빠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그가 걱정돼서 하는 말은 아니다.  

posted by cinemAgora
2009/12/11 09:10 2009/12/11 09:10
TAG

TRACKBACK :: http://enterfactory.net/trackback/193

진정한 한류 스타, 조혜련

연예 2009/11/19 09:46 Posted by 3M흥업
나라마다 문화적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다른 나라에서 연예 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최근 한국 가수들의 외국 진출이 빈번해지는 걸로 봐선 음악이야말로 문화적 차이를 가장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보편적 호소력을 지닌 것 같다. 연기라면 어떨까? 일단 그 나라 말이 돼야 한다. <지아이조>의 이병헌이나 <닌자 어쌔신>의 정지훈을 보면, 영어 연기가 꽤 그럴 듯 하다. 이들을 보면 타국어 연기도 노력을 통해 취득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자연스레 '월드스타'라는 칭호를 듣는다.

한데 코미디라면, 얘기가 다르다. 웃음의 코드야말로 나라마다 문화적 배경에 따라 가장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낄낄 대며 웃으며 보는 영화를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썰렁해 보이기 십상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터, 드라마든 영화든, 리얼리티쇼든 죄다 수입해서 틀어도 코미디만큼은 어지간해도 수입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데 이렇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분야에 과감히 도전해 성과를 보여준 이가 있으니, 바로 조혜련이다. 조혜련이 일본 쇼 프로그램에 나와 일본인들의 배꼽을 잡게 만드는 걸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한국인이 타국어로 그 나라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조혜련의 초인적, 국제적 유머 감각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게 된다.

일본 엔터테인먼트계에서 조혜련은 세 가지 핸디캡을 동시에 극복하며 새로운 신드롬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핸디캡이란 그녀가 여성이고 외국인이며, 결정적으로 솔로로 활동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보케와 츠코미(만담에서 유래된 일본의 독특한 코미디 공연 방식으로, 한 사람은 바보짓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이를 구박하는 방식으로 웃음을 생산한다.)가 짝을 이루는 팀 코미디가 대세인 일본에서 조혜련은 '나홀로 코미디'로 청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 전에, 간사이 출신의 아이돌 그룹 '칸자니 8'이 진행하는 쇼 프로그램에 조혜련이 출연한 것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한국의 전통 음식을 직접 요리해 칸자니 멤버들에게 먹이는 와중에도 쉴새 없이 진행자들을 웃기고 있었다. 그녀가 보여주는 개그 패턴은 한국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도무지 내숭과는 벽을 쌓은 듯 연타로 이어지는 그녀의 우악스러운 들이댐이 일본인들에겐 꽤 새롭게 다가오는 듯 보였다.

그렇게, 그녀는 한국적인 열정과 특유의 넘치는 에너지로 일본인들이 미처 개발하지 못한 틈새의 웃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목은 중요하다. 그들의 문화 안으로 동화되는 게 아니라 문화 밖의 이질성을 무기 삼아 시침 뚝 떼고 전진함으로써 참신한 재미를 창출하는 게, 그녀의 방식이자 성공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을 쉴새 없이 오가는 강행군을 소화하면서도, 가장 난이도 높은 분야에서 가장 걸출한 활동을 펼치며 두 나라의 문화적 간극에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그녀의 업적을, 한국 언론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할 때도 있다. 일본어로 일본인들을 웃기는 모습을 보는 게 아직도 불편하게 느껴져서 그런 걸까? 한국 연예계 사상 전무후무한 일을 하고 있는 이 불굴의 개그우먼이 아이돌 그룹의 활동상에 밀려 왠지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조혜련이야말로 진정한 한류 스타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부는 상이라도 줘야 한다.

덧붙임) 일산에 사는 그녀를, 내가 다니는 헬스클럽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바로 내 옆에서 러닝 머신을 하고 있던 조혜련이 트레이너와 나눈 대화가 기억에 선명하다. "나는 서너 시간을 뛰어도 지치질 않아요. 좀 지쳐 봤으면 좋겠어!"

posted by cinemAgora

2009/11/19 09:46 2009/11/19 09:46

TRACKBACK :: http://enterfactory.net/trackback/181

'루저의 반란'은 부메랑이다

연예 2009/11/16 09:35 Posted by 3M흥업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재미있는 사회현상이다. 미수다 출연자의 한마디 때문에 인터넷 공간이 시끌벅적해졌다. 이른바 루저들의 반란이다. 그 가운데 압권은 '키 작은 남자=루저' 발언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심기를 건드려 서해교전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패러디 유머다.

만들어 퍼뜨린 이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이 유머는 내게 상당히 중의적인 풍자로 들렸다. 오히려 키 작은 남자를 루저로 부른 데 대한 집단 반감의 얼토당토 않음을 꼬집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키 작은 남자를 루저 취급한 발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분노로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인터넷 공간의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가 더 웃기다는 얘기다.

기실, 외모에 대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표현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더욱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TV에서 하도 많이 봐 그러려니 하게 됐다. 그러니 별 문제도 안된다. 하지만 이번엔 남자의, 그것도 많은 이들이 컴플렉스를 지니고 있는 키를 놓고 문제 삼았으니 괘씸죄에 걸린 셈이다.  

결국 부메랑이다. 남자들의 몸이 상품화되고, 초콜릿 복근이니 뭐니 관음의 대상이 되는 세태다. 수 백년 동안 여자의 몸을 상품화하고 점수를 매긴 데 대한 복수다. 구매력이 권력인 시대에 여성들은 이제 그 권력의 시선으로 남자의 몸을 대놓고 품평하는 데 더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적응하고 살아야지 별 수 있겠냔 말이다.  

posted by cinemAgora

2009/11/16 09:35 2009/11/16 09:35

TRACKBACK :: http://enterfactory.net/trackback/176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SM엔터테인먼트

아마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냐고 힐난의 시선을 보내실 분들도 계실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나 역시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스스로 여러번 물어보기도 했다. 인지심리학에선, 자신한테 유리하거나 인지적 성향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취사 선택하는 걸 일컬어 '선택적 주목'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가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걸그룹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가사들이 곧잘 성적인 코드로 해독된다. 소녀시대는 늘씬한 다리를 연신 45로 각도로 쳐 올리며, 자꾸 "소원을 말해봐"라며 들이댄다. 소녀시대를 흠모하는 뭇 남성들이 그들에게 품을 수 있는 소원이 뭐 다른 게 있을까. 밥 달라는 거? 출세 시켜달라는 거? 혹은 황금을 달라는 것? 가사 중의 Genie는 아라비아의 동화에 나오는 캐릭터인데, 주인이 시키는대로 다 하는 요정을 말한단다. 소녀시대는 그러니까 자신들의 소구층들에게 당신의 충복이 되어주겠노라, 미소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느낌, 오버인가?

표면적인 가사나 그 의도가 그렇지 않다 치더라도, 이들의 가사는 걸그룹이라는 대중문화적 기표와 상호작용하며 중의적인 메시지를 슬쩍 얹기 마련이다. 포미닛이 부르는 '안줄래'같은 가사도 마찬가지다. 가사의 맥락을 따져 들으면 물론 평범한 사랑의 푸념이지만, 중간에 도드라지게 되풀이되는 '안줄래'와 '안할래'는 성행위를 연상케할 여지가 많다. 좀 음탕하게 받아들인다면, '네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너하고는 섹스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저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특히 적지 않은 남성들이 성행위에 교환이나 증여의 의미를 부여해 '준다' '안준다'라는 속된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게 들릴 소지가 큰 것이다. 소위 마초적 수사를 여성에게 대입시켜 놓고 즐기는 듯.

물론 이런 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가뜩이나 가요 심의의 잣대가 대체로 이런 논리를 들이대다가 논란이 되는 와중에 나까지 꼰대처럼 짐짓 '에헴'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게다가 성적인 기호는 비단 노래 가사 뿐 아니라, 광고에까지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마당이다. 심지어 30년 전에 나왔던 혜은이의 '제 3한강교'조차 "어제 처음 만나 사랑을 하고"라며 원나잇 스탠드를 슬쩍 암시한 바 있지 않은가. 물론 당시에는 신군부의 철퇴를 맞고 아주 건전(?)하게 개사되긴 했지만 말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걸그룹이 '섹스 어필'을 필수 생존조건으로 삼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거꾸로 그 가사조차 은근히 성적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고 풀이하는 게 오버하는 짓도 아니라고 본다. 뭐, 물론 간혹 이렇게 부풀려지기만 하는 성적 욕망의 사회적 총량이 결국 해소의 물꼬를 트지 못하며 틈새로 삐져 나오는 일탈 현상이, 요즘 뉴스의 화두가 되고 있는 아동 성범죄가 아닐까, 하는 비약적 추론을 하다가 그만두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래도 내가 끝내 민망할 수밖에 없는 건, 걸그룹이 '레이디'가 아니라 그야말로 '걸'들이기 때문인데, 이제 갓 2차 성징을 끝냈을 것 같은 앳된 모습의 그들이 '요부'의 표정과 몸짓으로 떼로 화면을 가득 채우며 앞선 의미로 해독될만한 소지의 가사를 읊어대고 있는 게 영 눈꼴이 시더란 얘기다. 내 여고생 조카가 만약 내 앞에서 그러고 있다면 황망했을 것이다. 진심이다. 다만, 눈꼴이 셔서 하는 얘기다.

posted by cinemAgora

2009/11/04 10:15 2009/11/04 10:15

TRACKBACK :: http://enterfactory.net/trackback/171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추석 대목을 노리고 개봉한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보며 모처럼 실소를 흘렸다. 대개의 야심 넘치는 작품이 그렇듯, 이 영화 역시 욕심이 지나친 흔적이 역력해 보였기 때문이다
.

<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알려져 있다시피, 야설록의 무협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다. 원작이야 무협에 방점을 찍은 터이니, 이것을 영화로 옮겨온다 했을 때는, 그에 맞는 영화적 전략을 세워야 하는 게 지당할 것이다. 그러나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원작에 대한 과도한 애정 때문인지 몰라도, 아무리 팩션 시대극으로 바라본다 해도 이해가 안될 설정을 그대로 밀어 붙이는 뚝심을 선보인다.

팩션은, 알려져 있는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증된 역사적 사실, 그러니까 관객들이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전후 관계와 사실은 함부로 건드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세종 대를 그리면서 당시 왕이 정조였다고 우기면 안 된다는 얘기다. 팩션은 알려져 있는 팩트사이에 난 틈새를 상상력에 의해 고안된 픽션으로 메움으로써 당시에 아마 이런 사람이 이런 일을 했다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까하는 새로운 드라마를 추출해내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나오고 있는 한국의 팩션 영화들은, 관객들의 말초적 카타르시스를 충족시킨다는 명분으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윤색이나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임시 정부도 아니고, 뜬금없이 대한제국에서 찾아, 약소국 콤플렉스를 배설했던 <한반도>가 그랬고, 세종대의 신무기를 모티브 삼아 조선을 일거에 동아시아 패권국가로 탈바꿈시킨, 초등 역사 수업적 가정법을 쓴 <신기전>이 그랬다. 차원은 조금 다르지만, <불꽃처럼 나비처럼> 역시 왜곡된 팩션 시대극이라는 점에선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사실 나는 문화계에서 명성황후를 낭만적으로 영웅시하는 걸 흔쾌하게 바라보지 않는 입장이다. 그가 나중에 국권을 강탈한 일본에 의해 시해됐다는 이유로, 무슨 대단한 애국지사인양 평가하는 것 같은데, 그 역시 청과 러시아 등의 외세를 등에 업고 권력을 보위하려 했던, 스러져 가는 봉건 왕조의 복무자였을 뿐이다. 어쨌든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견이 있으니 명성황후를 아름답고도 가련한 여인으로 그린 영화의 설정은 일단 용인하기로 하자.

이런 점에서 민자영, 또는 명성황후의 숨겨진 사랑이라는 설정 역시 팩션이라는 장르적 특수성 안에서 용인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용인될 수 있는 그 하나의 설정을 위해 영화는 역사적 상황을 입맛에 맞게 짜맞추는 데 지나치게 과감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호위 무사 무명과의 로맨스를 강조하기 위해, 대원군과의 갈등의 서사가 뒤로 밀리다 보니,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영화는 임오군란(1882)으로부터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로부터 목숨을 잃게 되는 을미사변(1895)까지의 지난한 권력 쟁투를 마치 몇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인 것처럼 속전속결로 펼쳐 보인다. 그리고 시종일관 명성황후를 대원군의 핍박을 온몸으로 받아 안는 가련한 피해자로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실제 그녀는 대원군을 몰아내고 오랫동안 실권을 장악했다.)

임오군란은 이미 탄핵으로 실권을 잃었던 대원군이 다시 정권을 잡는 계기가 된 사건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미 그가 정치적 실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 과정에서 도피했던 명성황후를 도와 그를 다시 복귀시키는 데 일조한 건 청나라 군대였다. 영화는 이를 우리의 주인공 무명으로 대치한다. 그래서 대원군의 군대와 맞서 싸우는 것도 청나라 군사가 아닌 무명이다. 그것도 홀로!

청을 등에 업은 명성황후의 반격으로 정치적 실권을 잃은데다 청에 유폐됐던 대원군이 어떻게 군대를 이끌어 경복궁을 공격하러 오는지 이해할 수 없을 뿐 더러,  자신의 무사에게 가서 며느리를 구하라라고 명하는 장면 역시 실소를 머금게 한다. 일본 낭인 왈, “늙은 여우”, 시해 당시 44살의 중년이었던 명성황후는 황후가 된 시절의 젊디 젊은 모습 그대로, 자신을 지키려다 먼저 간 무명 앞에 선채로 꼿꼿하고 가련하게 죽는다.

, 이런 단점 역시, 영화의 설정이 그러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면 대수가 아닌 게 된다. 이건 영화이고, 팩션이라고, 그러니 약간의 윤색 정도는 흔쾌히 눈감아줄 수 있는 게 아니냐고 한다면, 뭐 맞다. 나도 용인하는 게 속 편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문제가 그 뿐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중경으로 휘리릭 뚝딱 묘사하다보니, 황후와 무명의 로맨스조차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영화적 허점이다. 솔직히 나는 이들이 그토록 서로에게 절절한 이유를 모르겠다. 사랑하는 무명이 문앞에 있는 걸 뻔히 알고도 황후는 어찌 고종과 그토록 달뜬 섹스를 한단 말인가. 이 장면에선 무명과 파릇한 키스를 나누던 플래시백이 오히려 뜬금없어 보일 정도였다.

혹시 이것은 수애의 최초 베드신이라는 영화 외적인 흥행 요소와 영화 내적인 서사 알리바이를 무리하게 화해시키려다 생긴 충돌이 아니었을까? 차라리 무명의 사랑은 진심이었다 쳐도, 황후는 그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한 것일 뿐이라고 설정했다면, 명성황후의 낭만적 이미지에 흠집이 가는 것일까? 강박 관념인지 무능력인지 몰라도 프로듀서와 감독의 어정쩡한 입장이 영화를 어정쩡하게 만들고 말았다.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재연하기 위해서였겠지만, CG
에 기댄 초현실적인 액션 장면 역시 영화의 드라마적 흐름과 자주 엇나가며 어색함만을 드러낼 뿐이다. 삐걱대는 서사 속에서 인물들은 마치 임무를 수행하듯, 자신에게 맡겨진 감정을 수행하듯 발악하다 끝난다. 그러니 공명이 생길 리 없다.

결정적으로, 왜 최근의 팩션 영화들은 역사를 이렇게 유치한 방식으로밖에 소비할 수 없는 건지 답답증이 몰려온다. 팩션은 상상력의 빈곤을 가리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 터인데 말이다.

posted by cinemAgora
2009/09/28 00:50 2009/09/28 00:50

TRACKBACK :: http://enterfactory.net/trackback/135

  1. 촛불같은 애처로운 사랑 '불꽃처럼 나비처럼'

    Tracked from 토토의 느낌표뜨락  삭제

    열정이 느껴진 제목에 끌려서 또다시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이번달에는 도서구입비를 영화관람으로 탕진(?)했으니 다음달에는 좀 자숙해야 할 듯 합니다.^^ 『불꽃처럼 나비처럼』이란 제목에서 풍기듯... 열정적인 사랑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열정은 열정이로되,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인내하고 희생한 열정으로 맘속에 품은 여인을 지키고자 온몸을 던져 불꽃처럼 붉은 피가 낭자한 처절한 열정이었음이, 울나라 역사와 더불어 못내 안타까웠고 슬펐으며 살..

    2009/09/29 18:36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달 25일 이영애의 결혼발표 후 근 한달 간 그녀의 결혼 관련 취재를 했다. 언론과 숨바꼭질을 하는 그녀를 쫓느라 학교로 친정집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오가야 했고, 심지어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그녀의 차량 뒤를 거짓말 조금 보태 수십 대의 언론사 차량이 쫓아가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 속 추격 장면이 따로 없었다. 대개는 하나의 사안을 두고 매체들끼리 경쟁을 하기 마련인데 이번엔 경우가 경우인지가 '공조' 체제인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이영애의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그녀의 친정집 앞에 진을 치고 있었던 기자들은 아파트 마당에 쳐진 천막(원래 무슨 용도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늘에 앉아 수다를 떨며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떡볶이를 사다먹는 풍경도 벌어졌다.

사실 스타 관련 취재를 하면서 나만 '물'을 먹는 경우도 있고, 이번 경우처럼 모든 매체가 '물'을 먹는 경우도 있다. 전자는 개인 능력의 문제이니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겠으나, 후자의 경우는 위에 얘기한 것처럼 모든 매체가 공조하여 불편한 심기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영애 결혼 기사가 연일 쏟아졌지만, 온전히 축하 일색으로 도배한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이유도 그 때문. 물론 지극히 프라이빗한 일을 시시콜콜 알릴 필요는 없겠으나, 그간 여느 스타들이, 셀러브리티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최소한의 정보조차 제공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매체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더구나 그녀의 남편은 (다른 건 다 차치하고) 경제계 쪽에서도 이미 유명인사였던 터라, 남편의 실명조차 밝힐 수 없도록 한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많았다.

필자 또한 그녀의 결혼에 대해 취재를 하는 동안에는 '솔직히' 이렇게까지 까다롭게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기자 입장에서는 어찌 됐건 하나라도 더 알아내야 하는데, 일단 알고 있는 것조차도 쓸 수 없는 상황이니 그랬던 것도 같다. 더구나 그녀는 아무 스타가 아니라 이영애지 않은가!

그런데, 기사를 쓰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뭐랄까, 이영애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이영애는 결혼 후 제법 안티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취재를 위해 다양한 커뮤니티를 둘러봤는데, 이런 결혼을 한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글, 실망이라는 글 등이 제법 올라왔었다. 송윤아 결혼 때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이영애의 경우는 송윤아 때와는 또 다르다. 십년이 넘도록 한 남자를 바라본 이영애의 지고지순함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결혼 후에도 언론을 의식해 남편과 동반 입국을 할 수 없었던 그녀가, 내 남편 이런 사람이에요, 하고 말할 수 없는 그녀가, 공개적으로 데이트 한번 하지 못하는 그녀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스타도 사람인데, 사랑하는 사람과(특히 그녀처럼 오랫동안 바라봤던 연인과 결혼한 경우라면 더더욱)의 결혼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겠는가. 남편에 대한 배려때문에, 혹은 또 다른 누군가에 대한 배려 때문에 마음껏 행복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 같아, 짠한 마음이 들었다.

기사에서는 사실 축하한다는 한마디 표현을 못했다. 결혼과 함께 새 인생을 시작한 그녀가 부디 마음껏 행복하길 바란다.

posted by passion people
2009/09/25 17:32 2009/09/25 17:32

TRACKBACK :: http://enterfactory.net/trackback/134

  1. 한류스타 이영애, 배용준 주연 '파파'를 기억하는이유

    Tracked from QOOK TV 블로그  삭제

    :: QOOK TV에서 볼 수있는 지나간 추억의 명품 드라마 소개 2탄입니다. 1996년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드라마 '파파'를 기억하시나요? 지금은 우리나라를 넘어 일본에서, 또 중국에서 탑스타로 자리잡은 배용준, 이영애 주연의 '파파' 그때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도 정말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거든요. 무려 13년 전이지만 아직도 생생한 '파파'가 재미있었던 이유!~ 오늘 소개해 드릴까해요 ^-^ 욘사마 배용준씨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

    2009/12/17 13:46

'내 사랑 내 곁에' 맞춤형 슬픔

연예 2009/09/25 11:49 Posted by 3M흥업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 사랑 내 곁에>를 시사에서 본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관련 글을 쓰지 못했다. 이 영화에 대한 입장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주변에서 적지 않은 분들이 묻는다. "<내 사랑 내 곁에> 슬퍼요?" 그리곤 대부분 보고 싶다고 하는 걸 보니 흥행은 어지간히 되겠다 싶어진다. 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많은 분들이 특히 주연배우 김명민의 살신성인적 감량 투혼을 앞다퉈 칭찬했다. 그리고 그 투혼을 직접 보고 싶다는 말들을 잊지 않았다.

요컨대, <내 사랑 내 곁에>를 둘러싼 호기심의 기저에는 '슬픔에 대한 기대감(말이 이상하지만 사실이다)'과 건강을 상하면서까지 체중을 뺀 김명민이라는 배우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게 작용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이건 앞뒤가 살짝 뒤바뀐 느낌이 든다. 나는 <내 사랑 내 곁에>와 관련해 "영화가 좋냐?"고 묻는 질문을 단 한번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좋냐 나쁘냐가 아니라 슬프냐 안슬프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김명민의 피골이 상접한 나신이 그 슬픔을 강화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냐 말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사실 그것이 장르로서의 멜로 영화의 숙명이다. 슬픔을 제조 판매하는 것 말이다. 박진표 감독은, 멜로의 숙명까지 껴안는다. 그는 관객들을 위해 '맞춤형 슬픔'을 제조해 놓고, ', 이제 실컷 우시오' 하는 듯한 영화를 내놓았다.

사람이 죽는 이야기다. 사랑하는 이들이 사별하는 이야기다. 그게 슬프지 않으면 이상한 노릇 아니겠는가. 게다가 남자는 점점 불쌍해지고, 여자는 점점 지고지순해 지니, 안울고 버틸 재간이 없는 영화인 것이다. 남녀 주인공의 사별이 아무리 무한반복되는 소재일지라도, 설정과 등장 인물만 살짝 바꾸면 이게 또 먹힌다. 흔하지만 우리가 언젠가 겪을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소재는 그래서 진부하지만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이제, 앞서 내가 영화에 대한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고 한 이유를 말할 차례다. <내 사랑 내 곁에>는 멜로로서의 임무, 즉 관객들을 울리기 위한 설정과 장치에 충직한 영화다. 박진표 감독은 굳히 샛길로 흐르거나 쓸데 없이 작가적 서명을 올려 놓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이건 그냥 말 그대로, 슬픈 멜로다. 하지만 굳이 그가 안만들었도 슬플 영화다. 한없이 불쌍한 사람들을 실컷 동정한 대가로 얻은 슬픔의 언저리에는 저릿한 공명이 남지 않는다. 그저 내가 여전히 감정이 있는 인간임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데뷔작 <죽어도 좋아>를 비롯해 <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까지 지금까지 실화의 영화적 재연에 능했던, 한편으로 그 센세이셔널리즘의 힘을 활용하는 데 익숙했던 박진표, 순전한 허구의 세계로 들어서자마자 장르의 관성에 상상력을 내맡기는 무기력을 드러낸다. 어쩌면 이것은 처음부터 그가 가졌던 한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내가 기대하는 '좋은' 영화의 반열에 올려 놓을 수는 없다. 슬펐지만, 극장문을 나서는 순간, 그 슬픔은 증발되고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남는 건 있다. 김명민의 비쩍 마른 나신과 하지원의 세미 누드와 둘의 병상 베드신, 그리고 노래 '다시 태어나도'는 인구에 회자될 것이다.


posted by cinemAgora
2009/09/25 11:49 2009/09/25 11:49

TRACKBACK :: http://enterfactory.net/trackback/133

  1. '내사랑내곁에' 병상의 부부관계가 공감된 이유

    Tracked from 토토의 느낌표뜨락  삭제

    루게릭병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맘에 드는 고향후배에게 프로포즈하는 정우(김명민)의 용기와, 그 뜻을 받아들이는 지수(하지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현실에서 내게(이미 아줌마인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리 없지만^^), 혹은 내 주변사람에게 아니, 내딸에게 닥친 일이라면, 허락하기 힘들었을 사랑입니다. 저는 환자와 보호자 입장을 먼저 떠올렸고, 더구나 이미 이별이 예견된 아픈 사랑이라면 더더욱 인연을 만들지 말아야함을 강조했을 것입니다만, 영화는 저..

    2009/09/26 11:06
  2. 배우에 대한 예의로 보게 된 영화 '내사랑내곁에'

    Tracked from 토토의 느낌표뜨락  삭제

    영화개봉에 앞서 배우 김명민씨가 영화촬영을 위해서 20Kg이상의 살빼기 투혼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이슈가 되어 궁금증을 자아냈던 영화 '내 사랑 내 곁에'. 루게릭병 환자역을 맡은 김명민씨의 앙상한 모습이 눈물겨울 정도로 안쓰럽게 여겨지면서, '혹시라도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라도 한다면...' 더 안쓰럽고 가엾게 여겨질 것 같은 걱정이 밀려오면서, 꼭 봐야한다는 의무감마저 느끼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우울할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피하고 싶은 소재..

    2009/09/26 11:07
  3. 내사랑 내곁에_초가을날 펑펑 울게 만든 영화

    Tracked from 완득이네 골방  삭제

    [내사랑 내곁에 2009.09.24 개봉] 떨어지는 낙엽에도 가슴이 스잔해지는 느낌이 드는 초가을 이맘때쯤... 어떤 때는 그냥 펑펑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일상을 잠시 놓고 사는게 힘드노라 중얼거리면서 그냥 한껏 울어버리고 나면 드는 그 깨끗한 기분이랄까... 눈을 크게 뜨고 참아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체할 수 없을만큼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찌하지 못하는 순간... 2005년 너는 내운명이라는 영화가 그랬고 두번이나 보고도 또 펑펑 울어버린 20..

    2009/09/26 22:08
  4. 영화 "내사랑내곁에", 의외였던 2가지.

    Tracked from  삭제

    안녕하세요, 루셀리언입니다^^! 영화보러가는 것도 일인지라, 보통 주말에 맘먹고 극장에 가곤 했는데 오늘 뜬금없이, 영화가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근처 영화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았지요. 보고 싶은 영화는 딱히 없지만 그래도 '영화가 보고싶다', 라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내사랑내곁에"가 상영목록에 있는 거에요. ^^ 아시다시피, 김명민 씨의 연기투혼으로 개봉 전부터 엄청난 화제가 되었던 그 영화말이에요. 그래서 바로 예매하고, 좋은 자리에서 충분..

    2009/09/27 00:00
  5. 울지 않았다, 그저 지금에 감사할 뿐... 영화 내 사랑 내 곁에

    Tracked from 라디오키즈@LifeLog  삭제

    천형이라 해도 좋을 병. 육신 안에 영혼이 갇혀 버리는 병. 병이 진행됨에 따라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다가 죽어가는 병. 치료는 엄두도 못내고 그저 병의 진행을 늦춰 지상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는데 급급한 병. 질병에 신음하는 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주로 만났던 루게릭이라는 희귀병. 김명민, 하지원 주연의 영화 내 사랑 내 곁에는 그런 루게릭병으로 신음하는 남자 종우와 그를 사랑하게 된 여자 지수의 슬픈 사랑 이야기. 지난 주말 극장에서 영화..

    2009/09/28 15:20

유승호의 금지된 매력

연예 2009/09/22 12:56 Posted by 영화진흥공화국
유승호는 처음부터 참 잘생긴 꼬마였다. 영화 <집으로>의 철딱서니 없는 악동으로 등장했을 때부터 그랬다. 그리고 한동안, 우리는 그 꼬마를 잊었다. 내가 그를 다시 발견한 것은 내가 일하는 곳에 붙은 영화 포스터 속에서였다. 영화 정보라면 꽤나 주워섬긴다는 나도 처음 들어본 영화, <서울이 보이냐>의 주인공이었다.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얘가 이런 영화에? 라는 의문이 떠오른 거다. 그렇다. 나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유승호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유승호는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누나를 등에 업고서 시청자들에게 유산균식품을 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 나라의 20-30대 여성들은 모두 그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누나가 되어 버렸다. 이 글은 바로 그 누님들 중 한명의 요청으로 씌여진 것이다.

문제의 그 광고

문제의 그 광고



그럼 이제 유승호의 매력을 정리해봅시다~


매력1.
미학적인 조화


유승호를 말하면서 그의 외모가 제공하는 아름다움을 빼놓을 수는 없다. 눈 주변을 제외하면 맑디맑은 얼굴, 큰 눈동자와 짙은 눈썹, 그 외의 정확하고 뚜렷한 이목구비가 갸리갸리한 팔다리와 함께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순정만화의 그것에 견줄 만하다. 순정만화의 주인공답게 이 꼬마는 순수하다. 그러나 순수한 미소년이라는 것만으로는 유승호의 매력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유승호에게는 단지 순수하고 예쁘다는 것 말고 다른 기운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어두움이다.

일단 이쁘고 볼 일이다.

일단 이쁘고 볼 일이다.



매력2.
여리한 어두움-부조화의 매력


유승호는 어리다. 그리고 어린애답게 섬섬하고 여리하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 얼굴에서는 서글서글한 어두움이 묻어난다. 그래서 그를 ‘리틀 소지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약간 짙은 눈매와 젊은 애 답지 않게 힘없어 보이는 눈빛 탓일지도 모르겠고, 가느다란 팔다리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그가 연달아 맡은 어린 왕 역할이 남겨준 아우라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 꼬마는 귀여운데 귀엽지만은 않다. 우리는 언제나 부조화스런 대상에 눈길을 돌린다. 이것은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언제나 튀는 존재들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에게는 위협이지만 눈치가 빠른 자에게는 기회가 된다. 인류의 조상들은 그것을 감별하는 능력을 통해 죽을 자리에서 살아 돌아오곤 했다. 따라서 우리는 뭔가 어긋나는 존재를 감별하는 눈을 가진 이들의 후손들이고 비슷한 능력을 물려받았다.

군계일학, 닭떼 중에 학 한 마리가 눈길을 끄는 것은 그 학이 나머지 닭들과 부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여러 얼룩 중에서 어떤 얼룩이 묘하게 움직이고 있다면 그것은 그냥 얼룩이 아니라 호랑이다. 마찬가지로 귀여운 아이가 귀여운 짓을 하고 귀여운 분위기를 풍기는 건 그냥 한번 돌아봐 줄 정도로만 귀여울 뿐이다. 그러나 귀여운 애가 뭔지 모를 우수를 흘리고 다닌다면 이건 걸음을 멈추고 긴장하며 주시해야만 한다. 곧 저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승호는 꼬마 시절부터 그냥 어린애스럽지만은 않았다. 애가 별로 까불지도 않고 뭔가 아는 듯 조용히 남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애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남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아주 그럴듯한 남자가.

애가 뭐 이리 어두워 ...

애가 뭐 이리 어두워 ...



매력3.
성공한 성숙


사춘기의 2차 성징은 호르몬의 균형을 뒤집으면서 우리들의 외모도 함께 헤집어 놓는다. 왕자 공주 대접을 받던 우리네 인생이 마당쇠와 무수리로 격하되는 시점이 바로 이때부터다. 나를 볼 때마다 귀여워 어쩔 줄 모르던 어른들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조금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대하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바로 그게 그때다. 어떤 여자아이들은 이 전락을 막고자 음식을 거부하기도 하고 심해지면 사춘기 거식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변하는 몸을 막을 수는 없고 흘러가는 세월을 멈출수 없는 법이다. 사춘기의 혼돈은 아역스타들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그동안 누님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사춘기를 제대로 넘기지 못한 동생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여기서 <해리포터> 시리즈의 ‘다니엘 래드클리프’를 위해 묵념.

아, 해리...

아, 해리...



매력4.
금지된 장난-Guilty Pleasure


유승호에게 하악대는 누님들의 호소하는 또 다른 감정은 죄책감이다. 내게 자문을 해준 한 분은 이 감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내가 이런 어린애에게 무슨 짓인가,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 내 마음,
오히려 죄책감이 더 불을 지르는 이 상태.”

이건 새로운 일도 아니다. 이미 남자들은 오래 전부터 그래왔다. 나보코프가 <롤리타>에서 표현한 것이 그거고, 예전에 ‘SES'와 ‘핑클’이, 지금은 ‘원더걸스’와 ‘소녀시대’가 소구하는 것이 그것이며, 문근영과 김연아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다. 단지 여기에 누님들이 가세했을 뿐이다. ‘샤이니’라는 애들이 인기를 얻었을 때부터 이런 조짐은 있었다. 그리고 이제 유승호를 통해 그것이 본격적으로 분출되는 것이다.

남자들이 이미 그랬왔으니 여자들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원래 이런 거는 오히려 죄책감을 느껴야 더 즐길 수 있다. 롤리타 콤플렉스가 콤플렉스인 이유는 거기에 죄책감이 반드시 끼어들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는 금지된 것을 더 갈망한다. 사실 이것은 더 많은 자유를 원하는 본능의 발현이다. 우리는 누가 나를 금지하기 보다는 내가 남을 금지하기를 원하도록 진화해왔다. 금지를 극복한다면 우리는 한 단계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금지된 대상은 더욱 더 매력적이기 마련이다. 거기에는 그 대상 자체의 매력뿐만 아니라 자유와 권능의 매력까지 담겨있으니까. 유승호를 더 잘 ‘즐기는’ 비결도 여기에 있다.

당신이 죄책감을 느낄수록, 금지를 느낄수록 유승호가 내미는 숟가락은 더 달콤할 것이다.

짱가 / 영화진흥공화국(http://0jin0.com)
2009/09/22 12:56 2009/09/22 12:56

TRACKBACK :: http://enterfactory.net/trackback/129

Weekly Popular

textcube textcube get rss

엔터팩토리

태터앤미디어'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atter & Media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337-9 에이스투빌딩 4층 등록번호 : 서울아00815 등록일자 : 2009년 3월 24일 발행인 : 정운현 편집인 : 김경찬
Copyright 2009 (C)Enter Factory.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Tatter & Media. Designed by Qwer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