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친구’의 모자이크 장면들은 몰입을 방해하는 정도를 넘어서, 짜증을 유발시킬 정도였다. 출연진과 제작진은 물론, MBC까지도 원치 않았으나, 모자이크 없이는 방송 할 수 없었던 사회적 ‘공기(또는 인식)’ 때문인 듯 하다. 잘 알다시피, 드라마 ‘친구’의 모자이크 촌극은 TV의 폭력 묘사가 개인의 폭력 성향을 부추긴다는 ‘가설’ 탓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대학 시절, 교환 교수로 온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언론학 교수에게서 들은 일화 한 토막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TV나 영화의 폭력 묘사가 개인의 폭력 성향을 부추겨, 범죄율을 높이고 있다는 가설이 힘을 얻던 시절이었단다. 폭력 장면에 대한 법률적, 제도적 통제를 주장하는 보수 진영에 맞서, 할리우드는 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대항하고 있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보수 학자들은 공화당의 전폭적인 후원 아래, 대대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수백여 명의 학자들이 모여, 폭력적인 영상물이 개인의 폭력성을 증가시킨다는 가설을 학문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매달렸다. 언론학은 물론, 심리학, 아동학, 사회학, 인류학 등, 폭력 영상물의 해로움을 실체적으로 입증하려고, 거의 모든 종류의 학문이 동원됐고, 각종 인문학적 실험과 리서치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단다. 그렇게, 1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수천 쪽을 넘는 최종 보고서가 나왔단다. 그런데...
연구의 결론은 ‘영상물의 폭력 묘사가 수용자들의 폭력 성향을 증폭 시켜, 실제적 폭력행위를 일으킨다는 가설은 입증할 수 없다’였단다. 결국, 영상물의 폭력 묘사가 폭력 범죄를 부추긴다는 가설을 입증하려던 보수 진영의 시도는 무산됐고,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가 또 한 번 힘을 얻게 된 것. '표적 수사'와 다를바 없었던 보수 진영의 '표적 연구'는 왜 실패했을까?
폭력 묘사가 개인의 폭력성을 높인다는 가설을 입증하려면, 일종의 ‘경향성’이 보여야 한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표본 집단을 폭력 묘사가 가득한 영상물을 자주 보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으로 나눠, 그 차이를 살펴봐야 한다. 만약, 폭력 장면을 많이 시청한 쪽이 더 높은 폭력성을 지니고, 폭력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른다면, 가설이 입증된다. 그런데, 당연히 ‘경향성’을 보일 것이라던 당초의 예측과는 달리, 두 집단 사이에 별 다른 차이가 없었단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당시, 연구진들은 표본과 조사 기간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단다. 가장 과학적인 연구 방법은 유전적 요소가 동일한 쌍둥이들을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게 하되, 오직 폭력 영상물에 노출되는 횟수만을 다르게 하고, 성인이 된 후의 폭력 성향을 조사해야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으나, 이같은 연구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가설의 입증이 어려웠다는 변명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도 맹점이 있다. 수천명의 쌍둥이들을 실험실에 가두지 않는 한, 폭력 영상은 통제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실생활에서의 폭력은 막을 수 없다는 것. 기껏, 폭력 묘사가 담긴 영상물은 보지 못하게 막아 놨더니, 학교에서 친구들간의 일상적인 폭력이나, 교권을 빙자한 권위주의적 폭력, 국가기관의 정치적 폭력에 노출되면, 말짱 도루묵이란 점이다.
게다가, 영상물의 거짓‘참수 장면’보다 교사에게 맞은 실제‘뺨 한 대’가 개인의 폭력성에 더욱 강한 정서적 충격을 일으킨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면, 그들의 연구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었고, 향후 그 누가 연구를 진행한다고 해도,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게, 당시 교환 교수의 의견이었다. 물론, 워낙 오래 전 강의 내용이니, 구체적인 연구명과 연구에 참여한 학자, 그리고 통계치는 기억하기 어렵지만, 상식을 뒤엎는 그의 강의 내용 만큼은 아직도 정확히 기억한다.
폭력적인 영상물이 개인의 폭력 행위, 더 나아가 범죄율 증가의 원인이라는 세간의 가설은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다. 다만, 아동 심리학에서, 어린 아이가 폭력물을 보고난 직후, 폭력성이 다소 증가되는 경향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 적은 있다. 이는 물론, 어린이에게만 해당되는 결론은 아니다. 성인 역시, 폭력물에 노출된 직후 얼마간은, 심리학적으로 다소 폭력성이 증가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홍콩 느와르를 보고 나온 뒤, 영화의 주인공처럼 허공을 향해 괜스레 주먹과 발차기를 날리는 이들이 있는 게 사실 아닌가.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개인간의 편차가 크고, 그저 심리학적 성향의 증가일 뿐, 사회적 해악으로 작용하는 실제적 폭력으로 이어지는지 여부는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누구나 마음은 먹을 수 있으되, 이를 실제로 실행하느냐는, 심리학적으로 증가된 폭력 성향과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인성은 물론, 자신의 폭력 행위가 타인에게 알려지는지, 그리고, 특정 폭력 행위에 대한 사회적 처벌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폭력의 실행 유무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역사와 경험을 통해, 인간의 폭력성은 익명성이 보장되거나, 사회적 처벌이 존재하지 않을 때, 가장 높은 수위로 표출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폭력적인 영상물을 얼마나 많이 시청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게 아니라...
물론, 어린이와 청소년은 성인들과 조금 다르다. 폭력 행위의 피해와 그에 따르는 사회적 처벌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 낮을 뿐만아니라, 영상물과 현실의 경계 또한, 성인만큼 명확히 구분 하지 못한다. 따라서, 폭력 영상물, 특히, 미화된 폭력 영상물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사회적 판단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영상물을 접한 어린이나 청소년 모두가 실제로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는다. 인성의 차이나, 부모 또는 사회의 교육이라는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린이나 청소년의 경우에는 폭력 영상물이 폭력적 행동으로 고스란히 전이된다는 주장 역시, 온전히 ‘참’일 수 없다. 반대로 적용해 보자. 누군가 폭력 영상물에 전혀 노출되지 않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평생 단 한 번도 실제적인 폭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온전히 수긍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역시 ‘참’이 아님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폭력 영상이라고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그 옛날에도, 인류는 서로를 때리고, 죽이면서 살아 오지 않았는가? 과거의 폭력성 또한,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만큼 잔혹하고 극단적인 형태였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러니, 폭력 영상물이 실제로 폭력적 행위를 초래한다는 주장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폭력 영상물이 인간의 폭력성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 역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다. 지구상에 단 한 명도 나와 같은 사람이 없듯, 인간의 행동 양식은 도식화가 가능할 만큼 단순하게 규정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인간의 역사와 사회적 경험을 통해, 폭력 영상물 보다 훨씬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무엇인지는 안다. 그건 바로, 일상에서의 폭력이다.
폭력 영상물 속, 잘려 나간 손이 주는 충격 보다 바로 오늘 A4 용지에 베인 손가락의 통증이 훨씬 더 많은 잔상을 남기는 것 처럼, 일상에서 벌어지는 가족간, 친구간, 사제간, 선후배간의 폭력이 더욱 우리의 폭력성을 부추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관습과 관례의 탈을 쓴 일상의 폭력이, 국가 기관의 정치적 폭력을 '정당한 폭력'으로 인식 시킨다는 문제다. 규율이나, 위계 질서를 위해 사용하는 일상적인 폭력을 정당하다고 믿는다면,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명분으로 폭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사회와 국가의 폭력을 용인할 수 밖에 없다. 대신, 폭력 영상물이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논거의 희생양이 되어, 폭력성 증가의 책임을 온전히 지게 된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은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영화다. 그런데, 왜 제목이 ‘볼링 포 콜럼바인’일까? 여기에는 마이클 무어의 조롱이 숨겨져 있다. 사건이 발생한 뒤, 미국 주류 언론과 보수적인 학자들은 평소 범인들이 폭력적인 영상물과 게임을 좋아했다는 이유만으로, 사건의 원인을 사회나 교육 현실의 문제에서 찾지 않고, 오로지 폭력 묘사가 담긴 영상물에게로 책임을 돌렸다.
이에 격분한 감독 마이클 무어는 범인들이 범행 전날 볼링을 쳤다는 사실에 기초해, '콜럼바인 사건은 볼링이 원인' 이라는 의미로 ‘볼링 포 콜럼바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책임 회피와 이익 추구를 위해, 과학적 근거 조차 없는 해괴한 논리를 설파하는 주류적 시선에 대한 통렬한 조롱인 셈이다.
posted by PD the ri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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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봤습니다.
2009/06/29 18:20폭력관련 실험 동영상 트랙백합니다
^^
제가 직접 실험해봤습니다. ^^
글 잘 보았습니다.
2009/06/29 19:57그런데 제가 예전에 심리학 강의에서 얼핏 들은 기억으로는 폭력적인 장면을 본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폭력성이 시간이 흐른뒤에 거의 비슷해지더라도(폭력성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강화물이 주어질 경우에는 폭력적인 장면을 본 아이는 폭력성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그러니 폭력장면에 노출된 아이들은 폭력성이 잠재된다는 것이지요.
물론 님의 말씀처럼 영상물의 폭력장면보다 사회적인, 일상적인 폭력이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폭력적 장면의 노출이 폭력성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영상물에 의한 폭력적 장면 노출이 모든 폭력성의 원인이라는 것은 지나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폭력적인 장면을 본 열 명의 아이 중 한 명의 아이만이 그 영향을 받아 폭력성의 잠재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는 그 수치가 미미하다고해서 그것을 그냥 두어야 할까요? 아니면 한 명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폭력적인 장면을 제재해야 할까요?
아주 조금이라도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참고로, ebs에서 제작한 아이들의 사생활이라는 방송을 보면 아이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인형을 공격하는 모습, 인형을 사랑하는 친절 행동의 모습, 인형에 관심이 없는 무관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을 같은 방에 들여놓자 인형에 대해 공격 행동을 본 후의 아이들은 9명 중 7명이 공격행동을 모방하고, 친절 행동을 본 후의 아이들은 7명 중 3명이 친절 행동 모방, 무관심한 행동을 본 6명의 아이들은 모두 무관심한 모습을 보입니다. 매체의 영향력이 이렇게 엄청납니다.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TV를 끼고 삽니다. 거의 일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폭력적 행동의 표출은 다른 부분의 영향력이 개입될 수 있어 오로지 영상물의 영향력이지 않을 수도 있고, 영상물이 영향을 끼친다고 할지라도 다른 부분의 요소가 폭력성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칠테니 우리는 영상물의 폭력장면 노출을 그대로 방치해도 되는 걸까요?
저도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2009/06/30 00:06선생은 학생에게, 그 학생은 좀 더 약한 학생에게 폭력이 전이되다 시피 하는 환경에서 그 폭력성의 이유를 '테레비'로만 돌린다는게 웃기지 않은가 하는... 요는 생활의 폭력이 영향을 끼치는 것도 맞고, 영상물의 폭력성이 영향이 없다고 주장 할 수는 없겠지만 왜 항상 폭력에 대한 대처를 '가위질'로만 하려고 하느냔거죠. 결국은 폭력이 가져다 주는 '편의성'을 포기 할 수는 없고 대신 눈가리고 아웅은 해야 서로 마음이라도 편한게 아닐까 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박거성의 말대로 '그렇다고 마냥 놀'수는 없는거니까요.
명민한 작가의 책을 읽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 적이 있으시죠? 영화 속의 폭력 장면도 마찬가집니다. 지금 극장에 걸리는 정도의 수위는 10년 전, 20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지평이 넓어지는 거죠. 일단 어느 정도의 폭력을 알게 되면 거기까지 감당해내야 하는 겁니다. 분명 그걸 참아내는 사람과 분출해버리는 사람의 개인차는 있겠죠. 그러나 어쨌건 선악과를 따먹은 태초의 인간들처럼 죄는 알면 알수록 저지르기 쉬운 법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죠. 바로 거울 뉴런이란 겁니다. 웃는 얼굴을 보면 웃으려는 경향이, 화난 얼굴을 보면 화나려는 경향의 증거가 몇 년 전에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미디어로 방송되는 뉴스 속의 실제 폭력과 tv 영화, 드라마의 폭력은 무의식이 받아들이는 정도에선 차이가 없습니다. 맥락 없는 이해라는 것이죠. 다만 영화, 드라마의 경우엔 '이건 가짜다, 이건 가짜다' 하는 끊임없는 자기 각성을 통해 쾌락으로 방향을 돌릴 뿐이죠. 이와 관련해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들을 추천합니다. 그런데 정말 tv 속 손이 잘리는 장면보다 a4 용지에 베인 손가락이 더 오랜 잔상을 남기던가요?
2009/06/30 07:56네. 재밌게 잘 봤습니다.
2009/06/30 10:27폭력적인 영상들이 폭력성을 높인다라는 명제를 증명할 수 없었으므로, 둘 사이의 관계가 없다고 보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반대의 명제, 폭력적인 영상을 보았지만 폭력성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는 명제 또한 위의 명제처럼 증명하기 힘든건 사실이니까요. 어린쥐님의 말씀처럼 그러니, 최소한 이런 정보의 방패막이 서로 마음이라도 편하게 하는거 아닐까요?
물론 (연출이라는) 상황을 이해하는 이에게는 폭력 그 자체가 단순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지만, 상황을 이해못하거나 혹은 그 폭력의 수위가 높을 경우는 또 다른 영향이 있지 않을까요? (집에 TV도 없지만, 드라마도 보지 않아서 친구는 모르겠군요. 캡쳐한게 영화장면인거보면 관련이 있는걸까요 ^^?)
개인적으로는 비슷한 사례로 남발되는 욕설도 반대하는 입장인지라...;;
2009/06/30 19:27폭력도 굳이 매체를 통해 확대 생산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 공포영화들을 즐겨보는데
2009/07/01 01:06청소년기엔 안보다가 성인이 되면서부터 즐겨보기 시작했죠
그런데 갈수록 어지간한 자극에는 둔감화 되더군요
그리고 좀 기분이 나쁘거나 욱하게 되는 경우 영화속에서처럼 행동하고 싶기도 하구요
뭐 굳이 영화처럼 똑같이 따라한다기보단 폭력적인 충동이 일어나더군요
물론 제가 특이한 케이스일수도 있겠지만 저같은 사람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래서 요샌 가능하면 공포영화나 잔인한 영화들은 일부러 좀 멀리하고 있어요
정연할 글 잘 읽었습니다.
2009/07/01 09:05제작자의 의도나 취지에 상관없이 드라마 자체가 폭력이 볼거리가 되는 것은 반대합니다.
제작측에서는 폭력에 대한 미화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겠지요. 그 예가 부제입니다.
'우리들의 전설'이라고요?
문제가 생겼을 때, 폭력적으로 해결하려는 인성만 양산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쭙잖은 조폭코메디가 관객을 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젠 그만'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또 개봉되어 관객동원에 성공했다고 하더군요.
TV에서도 시청율 때문에 그러는 것은 정말 싫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조폭전문배우들을 깡패짓해서 돈번 놈들이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