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M興業/mgoon 공동 기획 인터뷰
지난 3일, 서울 청담동의 뮤지컬 연습실에서 이주노를 만났다. 이태원을 휩쓸던 춤꾼 이주노. ‘서태지와 아이들’로 더 이상 오를 데 없는 정상에 자리 잡았던 그는,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음반 기획과 솔로 데뷔 등 굴곡 많은 삶을 헤쳐 나와 뮤지컬 ‘이주노의 빨간 구두’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뮤지컬 홍보를 위해 몇 건의 인터뷰를 진행했으나, 정작 기사는 이주노의 사업 실패와 수십억 원에 달하는 빚에 초점이 맞춰져 당혹스러웠다는 홍보 담당자의 쓴 웃음을 뒤로하고 만난 그는, 세간의 시선과는 달리 활기차 보였다.
A. 뮤지컬 음악 작업을 하고 오는 중인데, 시간이 얼마 안남아서 조금 바쁘다. 요즘에는 서너시간 정도 밖에 자질 못한다. 그래도,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다.
Q. 오랜만의 복귀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방송환경에 적응하기가 녹녹치 않을 것 같다.
A.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이 많아서 별 어려움 없이 적응하고 있다. 잘 모르는 아주 어린 친구들하고는 그냥 인사만 한다.
Q. 뮤지컬 ‘이주노의 빨간 구두’는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굳이 본인의 이름을 넣은 이유가 있나?
A. 관객들에게 컨셉을 명확히 전달하려는 의도였다. 그냥 뮤지컬 ‘빨간 구두’가 아니라, ‘이주노의 빨간 구두’라고 하면, ‘춤’이 중심이 된 ‘넌버벌 퍼포먼스’라는 콘셉트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관객들 한테서 ‘이주노가 만들었다는 데 왜 저래?’라는 얘기를 듣지 않을 자신이 있다.
Q. 뮤지컬 오디션에 참여한 후배들이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더라. 부담스럽진 않나?
A. 전혀.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한때, 최정상에 섰던 이주노는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음반 기획과 솔로 데뷔의 길을 걸었다. 음반 기획자로 변신했던 초기, ‘영턱스 클럽’으로 잠시 성공의 길을 걸었지만, 후속작의 연이은 실패와 솔로 데뷔 음반인 ‘바이오닉 주노’의 실패로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다. 게다가, 연이은 사업 실패로 수십억 원에 달하는 빚까지 떠안고 절치부심 했다는 사실이 최근에 알려져 다소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그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Q. 요즘 후배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A. 예전에 비하면 환경이 정말 좋아졌다. 좀 억울하다는 생각도 한다. 내가 춤을 배우던 시절에는 인터넷은 커녕 VTR도 없던 시대 아닌가? AFKN(주한미군방송)을 보다가 새로운 춤을 발견하면, 오로지 기억력에 의지해 따라 배우곤 했다. 누구에게 물어 볼 수도 없고, 그 춤이 언제 또다시 방송되는 지 알 수도 없고...
Q. 80년대 말쯤 부터는 MTV 뮤직 비디오를 틀어주는 음악 카페가 있지 않았나?
A. 그건 한참 후의 일이고, 내가 춤을 배운 건 1982년 부터다. 보고 따라할 게 없었다. 오죽했으면, 그림을 그렸겠나? 만화(애니메이션)를 그리듯이, 노트에 연결 동작을 한 장씩 그려서 빠르게 넘기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그걸 보고 동작을 따라 배우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윈드밀(헬리콥터의 프로팰러처럼 몸을 회전시키는 댄스의 한 동작)’ 완성하는 데, 3년 정도 걸렸다. 요즘 후배들은 선배들 한테 배우고, 동영상도 있으니, 보름이면 익히더라.
Q. 그렇게 배울 사람이 없었나?
A. 있긴 있었다. 가끔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온 주한 미군의 자녀들 한테서 배우기도 했다.
Q. 그때 함께 춤 추던 친구들은 아직도 활동 하나?
A. 생각해 보니, 나만 남은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춤 추는 것 만으로는 생활이 되질 않으니, 다 떠나고 나만 남았다.
Q. 춤은 몸으로 하는 거라, 나이가 들면 안되는 것도 있을 것 같은데...
A. 안되는 건 없다. 젊을 때는 힘으로 추지만, 나이가 들면 기술로 춘다.
Q. 요즘 춤을 보면, 새로운 게 없는 것 같다. 사실, ‘비보잉’은 80년대 ‘브레이크 댄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보이고, ‘테크토닉’은 ‘허슬’의 변형인 것 같다.
A. 맞다. 둘 다 80년대의 춤을 변형한 것들이다. 하지만, 새로운 춤이 안나온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락킹, 팝핀 등 언더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춤을 추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한국의 댄서들은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춤을 계속 만들어 낸다.
Q. ‘서태지와 아이들’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A. 얻은 게 거의 다고, 잃은 건 없다고 봐야 겠지. 과분하게 많은 것을 누렸던 때였다. 굳이 잃은 걸 꼽자면, 호화로운 삶을 살다보니, 어렵게 춤을 배우던 때의 ‘정신’을 잃었던 건 아닐까 싶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없었다면, 더 치열하게 춤추면서 살았을 수도 있으니까.
Q.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굴곡이 많았는 데,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A. 아쉬운 건 없다. 하고 싶은 건 모두 다 했으니까. 내 경우, 자기만족이 더 중요하다. 그냥 내가 만족할 만큼 힘들고 치열하게 했으면 된 것 아닌가?
Q. 아무리 그래도 솔로 데뷔작 ‘바이오닉 주노’의 실패는 아쉬웠을 것 같은데...
A. ‘바이오닉 주노’는 내가 너무 앞서 갔던 거다. 대중이 원하는 이주노는 다른 모습이었는 데, 너무 일찍 시작했던 것 같다.
Q.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음반을 내 볼 생각이 있나?
A. 하고싶은 때가 오면 할 생각이다. 꼭 ‘바이오닉 주노 2’가 아니더라도,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Q. 그게 언제일까? 당신이 무대에 서는 걸 본지가 너무 오래된 것 같다. 꼭 노래가 아니더라도 무대에서 춤추는 당신을 볼 수는 없나?
A. 공식적인 무대가 2000년이 마지막이었으니, 꽤 오래되긴 했지만, 아직은 무대에 설 계획이 없다.
Q. 이번 뮤지컬 ‘이주노의 빨간 구두’에서 잠깐이라도 무대에 설 수도 있지 않나?
A.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 이번 뮤지컬은 후배들의 무대이지 내 무대가 아니다. 기획, 연출자로서의 내 역할에만 충실할 생각이다.
'아버지 이주노’. 힙합바지에 모자를 눌러 쓴 청년들은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뮤지컬 ‘이주노의 빨간 구두’의 오디션에 참여한 그들의 멘토는 오로지 ‘이주노’인 것처럼 보였다. 지금의 그들과 같은 나이에 ‘춤’ 하나로 이태원을 휩쓸고 다녔던 시절의 이주노에게는 그저 몸뚱아리 하나 뿐이었다. 거리를 전전하며 춤을 추고, 누군가의 무대를 ‘장식’하는 백댄서의 고단한 삶을 거쳐 정상에 올랐던 이주노. 그가 인터뷰 도중 가장 두 눈을 반짝였던 순간은 거리를 떠돌며 춤을 추던 ‘헝그리 댄서’ 시절의 에피소드를 털어 놓을 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