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브' 임을 강조하기 위해 TV 오른쪽 상단에 마이크가 둥둥 떠있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한데, 사실 나는 취지를 이해하면서도 괴로웠다. 댄스가수들은 노래에 치중하느라(치중해도 실력은 사실 그닥..) 춤이 아닌 거의 율동에 가까운 '몸짓'만 보여줬고, 그나마도 전혀 노래가 되지 않아 듣는 이를 괴롭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노래 잘해 가수 되는 거 아니고 연기 잘 해 연기자 되는 거 아닌 세상인 걸 뻔히 아는데, 이것 참 눈가리고 아웅도 아니고.. 암튼 그냥 춤 잘 춰서 가수된 이들은 계속 춤으로라도 눈을 즐겁게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더랬다.
처음으로 오지호란 인물이 돋보이기 시작한 건 2004년 '두번째 프로포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껄렁껄렁하고, 트레이닝 복이 잘 어울리고, 제대로 된 직업 없고, 있어도 별 볼일 없고, 하지만 심성은 착하고 때론 엉뚱한 면이 있는 캐릭터. 이런 캐릭터를 오지호만큼 잘 소화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두번째 프로포즈'가 기억나지 않는다면, 대 히트를 쳤던 '환상의 커플'의 철수를 떠올려보라.
반면, 정장 갖춰 입고, 심각한 표정 짓고, 멋진 말들을 쏟아내던 지적이고 근사한 남자 캐릭터로서의 오지호는 미안하지만 상상이 잘 안된다. 물론 오지호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2005년 정말 '쫄딱' 망했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드라마 '가을소나기'에서 그가 그랬다. 기억하기로 건축을 전공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는데, 비맞고 심각한 표정 짓고 그랬던 것 같다. 시청률 흥행에 성공했던 드라마 '인생이여 고마워요'에서도 오지호는 유명 아나운서 역할을 맡았었다. 그런데, 사실 그 드라마를 자주 봤음에도 불구하고 유호정과 김윤석만 생각난다.
연기자들, 특히 신인 연기자들이 초창기에 잘 쓰는 말이 있다. "백지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물 같은 존재가 될래요"가 그것. 설명하지 않아도 의미를 알 게다. 하지만, 백지 같은, 물 같은 배우가 되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데!! 역할이 바뀌는 것을 변신한다고 생각하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극과 극의 캐릭터를 오가면서도 보는 사람 입장에선 정말 '똑같은' 연기를 보는 것 같은 배우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정말 '변신'이란 단어를 논하기 위해선 송강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오지호 같은 배우가 있으면 송강호 같은 배우도 있는 것. 시청자들 생각해서, 관객들 생각해서, 괜히 어설픈 변신으로 보는 이들 민망하게 하고 흥행에도 치명타를 안겨줄 것 같으면, 그냥 잘하는 거라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차태현이 언젠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아마도 변신을 시도했던 작품들이 다 흥행에 참패한 뒤, 다시 코믹 캐릭터로 돌아온 즈음이었던 것 같다.) 배우가 무슨 태권브이냐고. 자꾸 변신을 종용해서 변신 시도해봤지만 다 망했다고. 그냥 잘하는 거 하면 안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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