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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철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은 두 개의 큰 테마가 교집합을 이루며 거침없이 전진하는 작품이다. 그 중 하나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해진 폭력적인 권력 관계를 묘사하는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환경 속에서 같은 여성들 간의 연대 또는 배신감에 관해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주민 전체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섬 무도에서 유일한 젊은 여성으로서 김복남(서영희)이 감내해야 하는 상황의 본질은 서울에서 독신 커리어 우먼으로서 살아가던 해원(지성원)에게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혜원은 단지 거리의 여성이든 어릴적 친구 복남이든 그들의 상황에 너무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지만 특히 복남에게는 그런 혜원의 냉정한 외면이 자신의 신체 위에 가해지는 폭력 보다 오히려 더 서럽고 마음 상하는 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앞서 개봉했던 하드코어 계열의 한국영화 화제작들 - <아저씨>와 <악마를 보았다> - 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 좋은 만듦새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김복남의 캐릭터를 입체감 있게 연기해낸 서영희나 다른 조연급 배우들에 비해 해원을 연기한 지성원의 존재감이 배역의 비중을 고려할 때 너무 쳐지고 있다는 점과 김복남이 생애 처음으로 뭍으로 올라온 이후 경찰서 내부를 중심으로 급작스럽게 전개되고 있는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원의 바로 누운 몸과 무도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마지막 컷은 김기덕 감독의 <섬>(1999)과 무척 닮아있는데 아닌게 아니라 김기덕 감독의 조감독으로 알려진 장철수 감독으로 하여금 처음 영화에 투신하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던 작품이 바로 <섬>이었다고 하니 나름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 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도에서 김복남이 해원의 옷가지를 챙겨입고 배를 타고 빠져나오는 장면은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1997년 중편 <바다를 보라>의 엔딩과도 닮아 있어서 그걸로 영화가 끝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경찰서 안에서의 상황으로 건너뛰는 바람에 역시나 '김기덕식 묻지마 영화 만들기'의 흔적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 만큼 마지막 십 여 분을 제외한 앞 부분의 전반적인 연출이 무척 깔끔하고 좋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연출의 역할이란 것이 작품 전체의 비중을 균형있게 조율해주는 -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일런지도 - 부분까지 포괄한다는 점에서 후반부에서 급박하게 느껴지는 전개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아쉬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좋았던 장면은 역시 아이를 잃은 후 정신없이 일하던 복남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결국 경계선을 넘게 되는 부분이었다. 알베르 까뮈의 소설 <이방인>의 결정적 장면과도 닮았지만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관객들은 이미 복남의 편에 서 있게 된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앞서 개봉했던 하드코어 계열의 한국영화 화제작들 - <아저씨>와 <악마를 보았다> - 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 좋은 만듦새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김복남의 캐릭터를 입체감 있게 연기해낸 서영희나 다른 조연급 배우들에 비해 해원을 연기한 지성원의 존재감이 배역의 비중을 고려할 때 너무 쳐지고 있다는 점과 김복남이 생애 처음으로 뭍으로 올라온 이후 경찰서 내부를 중심으로 급작스럽게 전개되고 있는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원의 바로 누운 몸과 무도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마지막 컷은 김기덕 감독의 <섬>(1999)과 무척 닮아있는데 아닌게 아니라 김기덕 감독의 조감독으로 알려진 장철수 감독으로 하여금 처음 영화에 투신하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던 작품이 바로 <섬>이었다고 하니 나름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 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도에서 김복남이 해원의 옷가지를 챙겨입고 배를 타고 빠져나오는 장면은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1997년 중편 <바다를 보라>의 엔딩과도 닮아 있어서 그걸로 영화가 끝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경찰서 안에서의 상황으로 건너뛰는 바람에 역시나 '김기덕식 묻지마 영화 만들기'의 흔적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 만큼 마지막 십 여 분을 제외한 앞 부분의 전반적인 연출이 무척 깔끔하고 좋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연출의 역할이란 것이 작품 전체의 비중을 균형있게 조율해주는 -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일런지도 - 부분까지 포괄한다는 점에서 후반부에서 급박하게 느껴지는 전개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아쉬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좋았던 장면은 역시 아이를 잃은 후 정신없이 일하던 복남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결국 경계선을 넘게 되는 부분이었다. 알베르 까뮈의 소설 <이방인>의 결정적 장면과도 닮았지만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관객들은 이미 복남의 편에 서 있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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